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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아이 장애 가능성" 들은 연주자, 8년간 장애아 12명 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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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스트 곽정(오른쪽)이 지난해 말 열었던 '셰어링 러브' 콘서트. 매년 공연 수익금으로 장애아들을 돕는다. [사진 스테이지원]

하피스트 곽정(오른쪽)이 지난해 말 열었던 '셰어링 러브' 콘서트. 매년 공연 수익금으로 장애아들을 돕는다. [사진 스테이지원]

 “뱃속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확률이 일반 산모의 40배라 했다. 임신 초기였는데 의사의 말이 ‘400배’처럼 들렸다.”
하프 연주자 곽정(47)은 2007년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품고 있었고, 자신은 얼굴에 대상포진이 시작되면서 안면 마비까지 경험해야했다. 2008년 태어난 아이에게는 장애가 없었다. “한참 울다가 생각했다.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하피스트 곽정의 '셰어링 러브' 콘서트

곽정은 1997년 지휘자 주빈 메타가 내한할 때 협연자로 선정했던 연주자다. 하프 연주자로는 드물게 독주자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전자 하프까지 다루며 연주 곡목을 늘렸고 98년부터 음반 6장을 내고 카네기홀에서도 연주했다. “그 전에는 내 이름이 부각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서 했다. 어떤 곡을 세계 초연, 아시아 초연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하프의 다양한 가능성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는 영아원을 찾앗다. 경기도 광주의 한사랑장애영아원에서 곽정은 “아이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2010년 12월에 ‘셰어링 러브(Sharing Love)’라는 제목으로 첫 공연을 열었고 티켓 수익금으로 3000만원을 모았다. 이 돈은 한 여자아이를 비롯해 3명을 돕는 데 쓰였다. “한쪽 손에 손가락이 셋이었고 신경에 이상이 있어 앞으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걷는 아이었다. 공연 수익금으로 인공 와우 수술, 언어 치료, 재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올해 11살인 이 아이는 이제 빠르게 잘 뛰어다니며 비장애인들이 있는 시설로 옮겼다고 한다.

하피스트 곽정. 일반 하프와 전자 하프를 다루는 연주자다. [사진 스테이지원]

하피스트 곽정. 일반 하프와 전자 하프를 다루는 연주자다. [사진 스테이지원]

‘셰어링 러브’ 콘서트는 올해 9번째로 열린다. 8년동안 1억5000만원을 모아 장애아 12명을 도왔다. “척추가 잘못돼 의자에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에게 수술비, 입으로 음식을 못 먹는 아이에게는 장비, 키가 크는 아이에게는 새로운 의족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수술도 그렇지만 이후의 재활치료에 돈이 상당히 필요하다.”

콘서트의 티켓 가격은 3만~10만원. 곽정, 그리고 하피스트 5명으로 구성된 ‘하피데이 앙상블’은 매년 개런티를 받지 않고 참여한다. 곽정은 ”'셰어링 러브'에 게스트로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도 차비 정도만 받는다. 무대 세팅도 나를 비롯한 하프 연주자들이 남대문 시장에서 사와 마련한다”고 했다. 초대권도 없는 공연이다. “다른 공연에서는 초대하고 싶은 분에게 ‘공짜’ 표를 드리지만 이 공연은 내 돈으로 초대권을 사서 드린다. 그래야 티켓 수익금으로 후원하는 의미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히 자라 12살이 된 곽정의 아들도 용돈을 모아 티켓을 구매해 공연장에 온다고 했다.

공연 내용은 대중적이고 쉽다. 올해는 피아졸라, 엔리오 모리코네를 비롯해 ‘여인의 향기’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음악을 연주한다. 곽정은 “연말 공연이다보니 다함께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하고, 매년 다른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공연장 밖 로비에는 모금함을 마련해 후원에 보탠다. “누굴 도와주려면 금액이 아주 커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주머니의 단돈 천원이라도 크다. 지난해에는 모금함을 열어보니 500원짜리가 들어있어 아주 감사했다.”

곽정의 ‘셰어링 러브’ 콘서트는 27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플루티스트 조성현, 바리톤 서정학,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 도브레 현악 앙상블이 함께 참여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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