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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획 시론

등록금 동결 11년, 대학 경쟁력이 무너지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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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상일 동국대 공과대학 교수

이상일 동국대 공과대학 교수

대한민국에서 11년째 예산이 제자리걸음하고 임금이 동결된 곳이 있다. 바로 대학이다. 등록금 인상에 부담을 느낀 학생과 학부모들의 원성이 커지자 2009년 정부는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놨다. 등록금을 올리면 재정지원사업 선정이나 국가장학금 지급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교육부 방침에 대학들은 감히 반발하지 못했고, 그렇게 11년이 지났다.

교육정책이 문제다 #고교보다도 못한 대학 실험실 #우수 교원은 기업으로, 해외로

2018년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은 약 718만원으로 2008년 대비 0.6%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등록금은 같은 기간 16.5% 하락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시설 노후화는 심화하고 실험 실습실은 고등학교보다 못해졌다. 토론이 가능한 소규모 수업은 설 자리가 점점 줄었다.

도서나 학술지 구매까지 축소하는 형편이니 교육과 연구에 대한 새로운 투자는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대학들은 적립금으로 적자를 메우기도 하지만 곧 바닥을 드러내고, 건물 감가상각에 대비한 적립조차 어려운 상황이 됐다.

교원 충원은 최대한 억제된다. 퇴임 교원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우수 연구자들도 하나 둘 기업 또는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연봉도 기업보다 훨씬 적고 연구시설도 빈약한데 고급두뇌가 대학을 선택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10억 달러(약 1조1700억원)의 특별기부금으로 50명의 신규 교원을 채용하고 수많은 장학금을 주는 인공지능(AI)대학을 설립한다고 발표했을 때, 한국의 대학에선 탄식이 이어졌다.

대학들은 새로운 수입원으로 해외유학생 유치에 주목하게 됐지만, 수학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마구잡이식 유학생 유치로 수업의 질과 분위기가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학생 탓에 조별과제 수행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대학이 유학생을 대체 수입원으로 생각하다 보니 외국인은 규칙을 어겨도 봐주고 재학생은 봐주지 않는다는 형평성 논란도 나온다. 최근의 홍콩 시위 관련 대자보와 ‘레넌 벽’을 둘러싼 학생들의 갈등과 마찰, 각 대학이 취하는 어정쩡한 태도에는 이런 사정이 숨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의 경쟁력이 추락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교육 경쟁력은 2011년 39위에서 2018년 49위로 내려앉았다. 영국의 QS 대학평가에선 2015년 이후부터 상위 20위권에 새롭게 진입한 한국 대학이 한 곳도 없다.

원래 등록금 동결 정책은 급격히 오른 등록금 상승분을 상쇄하기 위해 약 5년 정도만 하려던 것이었다. 지금도 법적으로는 직전 3개 연도의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 이하 수준에서 등록금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교육부도 정치권도 감히 정책을 폐지할 생각을 못 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엄청난 도전에다 정부와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과 무책임 때문에 대학이 빠른 속도로 활력을 잃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등록금 인상은 불가하며 재정지원금을 더 높여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닐뿐더러 대학에 대한 정부의 통제만 더 강화할 뿐이다. 대학 특히 사립대학에는 등록금 결정에 관한 자율을 허용해야 한다. 대학들도 미래 위기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혁신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대학은 퇴장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 대학 모두 변화와 혁신을 위한 노력을 더는 늦추지 말아야 한다. 대학의 교육 인프라 붕괴는 한국사회의 경쟁력 약화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이상일 동국대 공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