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나 외국인을 만났을 때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번역기가 엉뚱하게 번역하는 일이 잦다. 학계와 기업에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번역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일재 광운대 영어산업과 교수 #AI로 법조문 번역시스템 개발 #300쪽 책도 6시간 만에 완료 #“AI 번역 주도권 위해 정부 나서야”
대표적인 사람이 이일재 광운대 영어산업학과 교수다. 이 교수는 최근 번역서비스 기업 에버트란과 함께 AI를 이용해 법령을 영어로 번역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지난 11일 광운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산업혁명으로 노동이 바뀐 것처럼 AI가 번역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 법조문을 정확히 번역하려면 맥락을 알아야 하는데, AI가 어떻게 알 수 있나.
- “기계는 ‘아침에 아침 먹는다’는 문장에서 ‘아침’이 시간인지, 식사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반복 학습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 ‘아침’이 식사를 의미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는 1년간 법령 데이터를 계속 학습시켰다. AI가 해놓은 번역을 사람이 검토하고 수정하면서 번역의 질을 높였다. 지금은 이해에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 됐고, 번역가가 사후 검정을 해주면 더욱 질 높은 문장이 나올 수 있다.”
- 사람이 AI를 가르치는 셈인데.
- “그렇다. 이상한 표현만 찾아주면 되기 때문에 약간의 영어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우리 팀에는 학부 1학년부터 은퇴자, 경력 단절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AI 번역을 검수하고 수고비도 받는다. 학생들에게는 영어 학습인 동시에 학비를 버는 아르바이트가 됐다.”
광운대는 지난달 ‘하루에 책 한권 번역하기’ 이벤트를 열고 AI를 활용해 300쪽 분량의 책 한권을 6시간 만에 번역해냈다. 정부·기업에서 급박하게 대량의 문서를 번역해야 할 때를 가정한 실험이었다.
- AI 번역은 어디에 활용될 수 있을까.
- “정부의 공문서를 즉시 외국 언어로 번역한다거나 해외 각국의 신문기사 등을 매일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웹툰처럼 매일 나오는 콘텐트도 곧바로 번역해 수출할 수 있다. AI 번역은 기존 번역보다 비용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번역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 번역 주도권이란 게 뭔가.
- “예를 들어 한복, 태권도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우리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한국어 번역을 다른 나라가 주도한다면 한복은 ‘코리안 기모노’, 태권도는 ‘코리안 가라데’로 번역될 수 있다. 국가적으로나 산업적으로 투자가 필요하다.”
- 나중엔 영어 공부할 필요가 없나.
- “모국어로 말하면 번역 기술을 통해 상대방의 모국어로 전달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나도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전 국민이 영어를 잘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물론 전문 영어 능력을 갖춘 사람은 계속 필요할 것이다.”
광운대는 기존 영문학과를 올해부터 영어산업학과로 바꿨다. 영어를 기반으로 사회 트렌드를 반영한 교육을 한다는 취지다. 이 교수의 AI 번역 프로젝트뿐 아니라 게임 등 문화콘텐트 창작, 영어교육 콘텐트 창작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 교수는 “시대가 바뀌는데 인문학이 하던 대로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