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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부, 내년 2월 호르무즈 해협에 청해부대 파병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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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내년 초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내년 1월 연락 장교를 파견한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했으며, 2월엔 구축함도 파견할 방침이다.

느슨해진 한·미 동맹 강화 포석 #청와대 NSC 결정, 미국에 통보 #연락장교 1명은 내년 1월 파견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함(왼족부터)이 영국 해군의 구축함인 디펜더함, 미 해군의 구축함인 패러것함과 함께 지난 11월 19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AFP=연합]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함(왼족부터)이 영국 해군의 구축함인 디펜더함, 미 해군의 구축함인 패러것함과 함께 지난 11월 19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AFP=연합]

1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는 바레인에 사령부를 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연락 장교 1명을 보내기로 하고, 미국과 실무 협의에 들어갔다. 한 정부 소식통은 “연락 장교는 내년 1월부터 IMSC 지휘통제부에서 근무한다”며 “이 연락장교는 우선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면서 본격적인 전투부대(구축함) 파병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은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와 가스의 3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유조선을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NSC 참석자들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운행 중인 한국 국적의 유조선이 많지 않다”며 “이번 파병 결정은 결국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엔 한ㆍ일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연장을 놓고 미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느슨해진 한ㆍ미동맹을 다시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렸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이 지난 11일 NSC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자위대 소속 구축함 1척과 해상초계기 1대를 독자적으로 보내는 방침을 굳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 움직임도 빨라졌다”고 귀띔했다.

지난 10월 16일 청해부대 29진 대조영함이 진해항으로 복귀한 뒤 청해부대원이 해군 부사관인 부인과 입맞춤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0월 16일 청해부대 29진 대조영함이 진해항으로 복귀한 뒤 청해부대원이 해군 부사관인 부인과 입맞춤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8일까지 서울 열리는 한ㆍ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셈법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현금 이외 더 많은 방위 기여(defense sharing)를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한국의 방위 기여분을 높이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연락 장교 파견에 이어 내년 2월 소말리아 아덴만에 파병한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옮기기로 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신중론이 NSC에서 나왔다”면서도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으로 의견이 모였다. 사실상 파병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해부대는 4000t급 구축함 1척을 주력으로 하며, 2009년 4월부터 연합해군 사령부 소속으로 아덴만에서 활동중이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예정인 왕건함(DDH-978). 그래픽=신재민 기자

호르무즈 해협 파병 예정인 왕건함(DDH-978). 그래픽=신재민 기자

해군은 6개월마다 청해부대 파견 구축함을 교체한다. 지난 8월 출항한 청해부대 30진인 강감찬함의 임무 교대 시점은 내년 2월이다. 청해부대 31진인 왕건함이 12월 말 부산을 떠날 예정이다. 왕건함은 출동 준비를 위해 지난 13일 부산 앞바다에서 민관군 합동 해적진압 작전 훈련에 참가했다. 군 당국은 왕건함이 강감찬함의 임무를 넘겨받은 뒤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호위 작전에 투입할 계획이다.

정부는 청해부대가 IMSC 아래 들어갈지, 독자적으로 작전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연락 장교의 상황 보고를 받은 후  최종 결정키로 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독자 활동보다는 IMSC 편제가 더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참가 국가 사이에서 수역을 나눠 유조선을 보호하는 방식이 청해부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청해부대 31진에 해상작전 헬기를 기존 1대에서 2대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군 관계자는 “이란 해군이 북한에서 수입한 연어급 잠수정을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했다는 정보가 있다”며 “대잠 초계를 강화하기 위해선 해상작전 헬기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위치와 정부의 파병 결정 이유. 그래픽=신재민 기자

호르무즈 해협 위치와 정부의 파병 결정 이유.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회 동의와 관련, 국방부는 법률 검토 결과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에 호르무즈를 추가하는 것은 국회의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아덴만과 멀지 않은데다 동의안에 명시한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일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동의안은 ‘구축함 1척’과 ‘인원 320명 이내’라는 제한을 뒀기 때문에 대규모 전투부대를 파병하려면 국회 동의를 다시 받아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등 중동의 산유국 가운데 있다. 길이 167㎞에 폭이 39~96㎞, 수심 75~100m로 좁고 얕은 바다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 산유국에서 원유나 가스를 싣고 나오려면 꼭 거쳐야 하는 병목지역이다.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 연안 해역에서 공격을 받은 노르웨이 국적의 유조선 MT 안드레아 빅토리호의 아랫부분이 13일(현지시간) 훼손돼 있다. [AP=연합]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 연안 해역에서 공격을 받은 노르웨이 국적의 유조선 MT 안드레아 빅토리호의 아랫부분이 13일(현지시간) 훼손돼 있다. [AP=연합]

지난 5, 6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이 잇따라 공격을 받자, 미국은 이란을 배후로 지목한 뒤 지난 10월 미국 주도로 IMSC를 창설했다. 여기엔 현재까지 미국을 포함 영국,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UAE, 알바니아 등 7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일본은 IMSC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작전을 펼칠 예정이다. IMSC 사령부 역할을 하는 IMSC 지휘통제부는 지난달 발족했다.

정부가 IMSC에 파견할 연락 장교는 바레인에 있는 연합해군 사령부에 나가 있는 참모 장교 4명 중 1명이다. 이 연합해군 사령부는 소말리아 아덴만의 해적 퇴치 목적으로 창설했다.

이철재ㆍ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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