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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이 몰락한 이유…유권자는 무상 공약 남발을 심판했다

중앙일보

입력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페이스북]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페이스북]

지난 12일 치러진 영국 조기 총선에서 야당이자 진보정당인 노동당이 참패했다. 선거 실시 이래 단 한번도 패배한 적 없던 텃밭 '블리스 밸리'에서 조차 보수당에 의석을 내주면서 노동당이 '녹아내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영국의 진보성향 일간지 가디언은 13일(현지시간) '영국의 노동당이 실패한 5가지 이유'를 분석 보도했다.

◇진짜를 위한 변화?…남발한 무상공약 

가디언은 노동당의 참패 요인으로 '무상'이 남발했던 공약(Manifesto)을 꼬집었다.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지난달 발표했던 노동당의 공약집 '진짜 변화를 위한 시간(It's Time For Real Change)'은 노동당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노인 무상돌봄 △대학등록금 무료 △2020년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5% 임금 인상 △의회 임기 말까지 15만채의 사회주택 건설 △고소득자 및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 △보건의료 등 무료 공공서비스 확대 △투표연령 만 16세 하향 △WASPI(연금 불평등에 저항하는 여성 운동)에 대한 보상 지급 등이 포함됐다.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지난달 21일 노동당의 공약 '진짜 변화를 위한 시간(It's Time For Real Change)'을 들고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지난달 21일 노동당의 공약 '진짜 변화를 위한 시간(It's Time For Real Change)'을 들고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가디언은 이에 대해 "거의 모든 사회분야에 대해 급진적인 복지 공약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노동당의 이런 파격적 무상복지 공약에 보수당은 표심 이탈을 우려, 법인세 인상 정책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자칫 '포퓰리즘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였다.

그러나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뒤 노동당 관계자는 가디언에 "사람들이 그 공약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지만, 공약이 과하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무상 광역통신망 공약은 정말 인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당의 무상공약은) 유권자들이 '이건 이상하리만큼 사치스러운데 우리가 왜 그런 것들을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자인했다.

심지어 코빈 노동당 대표를 지지하는 평당원 그룹인 '모멘텀(Momentum)'의 존 랜스만 대표까지 "공약이 너무 구체적이고 길었다"며 "그건 (미래) 10년을 위한 프로그램이지, 한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레드월의 붕괴, 브렉시트 찬성표도 이탈 

노동당 몰락의 두번째 원인으로는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 지역인 북아일랜드 공업지역 '레드월(Red Wall)의 표심을 잃은 것이 꼽혔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의 승패는 영국의 '러스트 벨트'에 해당하던 레드월에서 갈렸다. 과거 광산지대가 많았던 이 지역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 집권 이후 잇따른 광산폐쇄 정책 등으로 쇠락하면서 강한 반(反)보수당 정서가 자리잡았다. 20년 넘는 기간 동안 노동당의 텃밭으로 인식됐지만, 지난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때 찬성 여론이 강해지면서 민심 이반 조짐이 보였다. 그럼에도 노동당은 이런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서 레드월의 3분의 2를 보수당에 내줬다.

제레미 코빈(왼쪽) 영국 노동당 대표가 10월 31일 선거운동 중 잉글랜드 버킹엄셔 카운티 밀턴케인스에서 유권자와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제레미 코빈(왼쪽) 영국 노동당 대표가 10월 31일 선거운동 중 잉글랜드 버킹엄셔 카운티 밀턴케인스에서 유권자와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조기 총선이 열린 결정적 이유였던 브렉시트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없었던 것도 패착으로 꼽혔다.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과반 확보 후 브렉시트를 2차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지난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에 찬성한 1740만 표심의 이탈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꼭 브렉시트를 강행하지 않더라도, 브렉시트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은 사실상 1740만표를 그대로 수장시킨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이다.

◇코빈 대표의 '비호감' 이미지도 타격 

재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오랜 비호감 이미지도 노동당 몰락에 한몫했다. 과거 코빈 대표는 영국이 북아일랜드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장년층의 강한 반발을 샀고 그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 오랫동안 코빈 대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노동당 소속 정치인 루스 스미스는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개인적인 행동들이 이 같은 결과(노동당 참패)를 불러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이 밖에도 노동당 선거 전략의 실수를 꼽기도 했다. 이 매체는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과반 확보를 목표로 했는데, 이는 당에 부담이 됐다"며 "선거운동을 주로 초접전 지역에 집중하면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일부 지역의 의석을 위태롭게 했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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