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이 한쪽 편만 들어선 안돼…예산안 등 중재자 역할 아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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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국회 파행의 덤불 속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좀처럼 길을 내지 못하고 있다.

파행 국회 해법, 원로에게 듣는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한나라당 출신) #지금 국회는 대화·타협 능력 실종 #야당 무시하는 여당이 우선 책임 #임채정 전 국회의장(열린우리당 출신) #싸우더라도 국회서 문제 풀어야 #야당이 여당 노릇 하겠다는 건가

대화와 협치의 중재자여야 할 문희상 국회의장도 엉키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 의장들이 결정적 순간에 ‘친정’ 편을 들어 비판받았다면 문 의장은 그런 순간들이 이어져 야당의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이에 과거 국회의장 출신 원로들에게 지혜를 구했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출신의 박관용(81) 전 국회의장은 16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당일(2002년 7월 8일) 당선 인사에서 “중립을 위해 의장 임기를 마치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국회의장 임기 후 불출마’ 관행의 시작이다.

박 전 의장은 15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의 국회는 민주주의가 고장 난 상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을 그 어느 정당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회 때문에 국민이 고생”이라고 했다.

특히 문 의장의 조정 역할 미비를 꼽았다. 박 전 의장은 “패스트트랙 불법 사·보임 논란이나 이번 예산안 통과 등을 보면서 중재자 역할에 대한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국회의장은 단순히 다수(여당)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아니고, 방망이(의사봉)만 두드리는 사람도 아니다”고도 했다.

20대 국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다.
“정당 정치라는 건 정책과 이념이 다른 정당들이 잘 어울리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국회엔 이런 타협 능력이 없다. 여당의 경우 양보를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야당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일차적인 책임이 바로 여당의 야당 무시다.”
한국당은 어떤가.
“싸우려고만 들지 말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 야당도 여당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이익 탐하다 대의 놓치면 국민의 정치 불신·혐오만 남아”

임채정 전 국회의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출신의 임채정(78) 전 국회의장은 이날 “정당이 작은 이익을 탐하다 대의를 놓치면 남는 건 국민의 정치 불신과 혐오뿐”이라고 말했다. 임 전 의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않겠다는 건 의회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어디까지나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회주의 대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전 의장은 17대 국회 후반기 의장을 지냈다.

한국당은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을 양대 악법이라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화를 안 하겠다는 건 의회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내 주장대로 안 되면 아무것도 안 된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여당 노릇 하겠다는 것 아닌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 ‘왝 더 독(Wag the Dog)’이다.”
국회 파행에 민주당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지금 민주당이 군소 야당의 다양한 요구에 둘러싸여 운신의 폭이 좁은 것 같은데, 어찌 됐든 밤을 새워서라도 타협안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양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세가 더) 큰 쪽에서 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

김형구·김준영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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