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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국회의장은 방망이만 두드리는 자리 아니다…중재 아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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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81) 전 국회의장은 16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당일(2002년 7월 8일) 당선 인사에서 “중립을 위해 의장 임기를 마치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국회의장 임기 후 불출마’ 관행의 시작이다. 의장 당선과 동시에 박 의장은 당시 한나라당 당사를 찾아 탈당계를 냈다. 훗날 법에도 명시(2005년 국회법 개정)된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가 그렇게 시작됐다. 『나는 영원한 의회인으로 기억되고 싶다』(2015년)는 그의 책 제목처럼, 국회의 중요성과 자부심을 강조한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중앙포토]

박관용 전 국회의장. [중앙포토]

그런 박 전 의장은 15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의 국회는 민주주의가 고장 난 상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을 그 어느 정당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회 때문에 국민이 고생”이라고 했다.

특히 문희상 국회의장의 조정 역할 미비를 꼽았다. 박 전 의장은 “패스트트랙 불법 사ㆍ보임 논란이나 이번 예산안 통과 등을 보면서 중재자 역할에 대한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국회의장은 단순히 다수(여당)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아니고, 방망이(의사봉)만 두드리는 사람도 아니다”라고도 했다.

20대 국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다.
정당 정치라는 건, 정책과 이념이 다른 정당들이 잘 어울리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국회엔 이런 타협 능력이 없다. 여당의 경우 양보를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야당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일차적인 책임이 바로 여당의 야당 무시다.
여당이 양보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권력을 더 가졌기 때문이다. 가진 자가 양보하는 거다. 그게 민주주의다. 예를 들어 선거법 개정안의 경우도, 이미 의석을 더 선점한 여당이 자기 뜻을 관철하려 하기보단,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아량을 보여줘야 한다. 힘 있는 자가 힘을 쓰려 하면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당은 어떤가.
무턱대고 다 투쟁을 해버리면 명분이 없다. 싸우려고만 들지 말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 야당도 여당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더 많이 지지받은 세력이 여당이다. 이들의 입장을 존중해줘야 하는데, 여든 야든 상대방을 없애버려야 할 세력으로 보는 것 같다. 정치 실종이다.

말을 이어가던 박 전 의장은 국회의장이라는 자리가 너무 저평가돼 있다며 “이참에 언론에서도 국회의장의 중요성을 환기시켰으면 한다”고 했다. 3권분립 국가의 한 축인 입법부 수장인데, '인품 있는 다선의원' 정도로만 여긴다는 얘기다.

정국을 어떻게 풀 수 있나
국회의장이 풀어야 한다. 의장이 일방적으로 누구 편을 들어선 당연히 안 되고, 여당을 불러선 야당에 양보해달라고 설득하고 야당을 불러선 고집 너무 부리지 말라고 해야 한다. 타협을 끌어내야 하는 게 의장의 역할이다.   
과거 의장 시절엔 어떻게 했나.
나는 수시로 의장 공관실에 여야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불러 저녁을 먹었다. 당시 여당 원내총무에겐 다수라고 횡포를 부리지 말라고 여러차례 경고를 했고, 야당 원내총무에겐 지금이 독재정권도 아니고 무조건 싸우려고만 하지 말라고 했다.  

박 전 의장은 “나는 의장을 하면서 후대에 오욕을 남겨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어 “사회만 보는 게 아니라 조정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정국 사태에서도 중재자 역할 안 하고 본회의에서 방망이 들고 숫자만 셀 거면 뭐하러 있나. 방망이 두드리는 건 그냥 국회 사무총장 시켜도 된다”고 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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