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더라도 국회는 열어놓고 싸워야 한다.”
원혜영(68)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남긴 퇴장 메시지다. 5선 의원인 그는 11일 같은 당 백재현(3선) 의원과 함께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1951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불출마 결정 배경과 소회, 계획 등을 밝혔다. 이날은 제1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20대 정기국회 종료 다음날이었다.
원 의원은 “이번 20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면서 “1992년 14대 국회에 처음 등원한 이래 30년 가까이 선출직 공직자로 일했다”고 밝혔다. 30세(1981년)에 ‘풀무원 식품’을 창업한 그는 정계 입문 후 경기 부천(오정을)에서만 5선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 부천시장도 지냈다.
7차례의 선출직 경력을 되돌아보며 원 의원은 “과정마다 비교적 순탄한 여정이었다”고 총평(總評)했다. 다만 18대 국회에서 원내대표로 활동한 때를 회상하며 “당시 88일 최장기 개원 지연 기록을 세웠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후배 의원들에게 ‘일하는 국회’를 강조했다. 원 의원은 “국회가 열려야 일을 한다. 일하는 걸 봐야 저 국회의원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게으른지 부지런한지 알 것”이라면서 “(현행 국회법이) 법안소위를 월 2회 이상 개회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이) 감독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일부 의원들과 ‘국회선진화법’(국회법)을 만들었다.
중진 용퇴 행렬에 동참하지만 ‘물갈이’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냈다. 원 의원은 “우리들의 이런 정치 마무리가 물갈이 재료로 쓰이는 분위기에 대해 늘 우려를 가지고 있다”면서 “국회와 정치가 물갈이를 통해 (잘) 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총선 때마다) 기본 40% 이하 물갈이가 안 된 적이 없다. 그러나 국회는 이 모양”이라고도 했다.
원 의원은 정치권에서 계파색이 옅고 무난하다는 평이다. 민주당 계열에선 선수로는 이해찬 대표(7선), 정세균·이석현 의원(이상 6선) 뒤를 잇는 중진이라 한동안 당내에서 국무총리 발탁, 국회의장 도전 가능성 등이 점쳐졌다. 원 의원은 “희망하는 것을 다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한편 민선 광명시장을 2차례 지낸 백 의원은 “대한민국이 실질적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저출산 고령화와 빈부격차 해결, 혁신성장과 남북관계 화해의 길, 후진적 정치시스템 개선 등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했다. 그는 과거 민주당 정책위의장, 경기도당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백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물고기만 바꿨지 물을 바꿔본 적이 없다”며 원 의원의 ‘물갈이 무용론’에 동의했다.
이해찬 대표는 두 중진의 용퇴에 대해 별도 입장문을 냈다. “후배들을 위해 명예로운 결단을 했다”며 “당대표로서 감사와 아쉬움을 전한다”고 했다. 이 대표와 표창원, 서형수, 진영 의원에 이어 이날 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내 지역구 불출마 의원은 6명이 됐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