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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심재철 원내대표 선출, 여야는 대화 모멘텀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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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파국으로 치닫던 연말 국회가 어제 자유한국당의 새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새 원내 사령탑에 선출된 심재철 원내대표가 한국당이 신청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것)를 사실상 철회하고, 여당은 패스트 트랙(신속처리 지정 안건)에 오른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10일)에 상정하지 않기로 잠정 합의했다.

오늘 예산안 처리, 필리버스터 사실상 철회 #선거법·공수처법도 여야 합의로 처리해야

브레이크 없이 마주 달리던 여야가 충돌 일보 직전에 극적 돌파구를 찾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여야의 극한 대치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제대로 심의조차 못한 민생·개혁법안이 수두룩하다.

당장 예산안부터 문제다. 여야는 오늘(10일) 열기로 한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나 졸속, 깜깜이 심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인 수퍼 예산안(513조5000억원)을 내놓았을 때부터 선심성, 땜질 예산이란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국회는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12월2일)을 넘기고도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다, 어제 오후에야 부랴부랴 막바지 심사를 위한 예결위가 가동됐다.

나랏돈이 신산업 발굴과 성장 동력 견인을 위해 쓰이는 지 감시하기는커녕 총선을 앞두고 여야 의원들 간 지역구 챙기기 담합 양상을 드러내 비난을 받고 있다.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국회가 되레 국가의 재정부담을 늘리는 데 동조하는 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비판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더 큰 뇌관은 정기국회 이후다. 한국당을 제외한 이른바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 합의한 선거법·공수처법 처리를 놓고 샅바 싸움이 거칠다. 여야는 물밑 접촉을 벌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공수처의 구성과 기능,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연동 비율 등 핵심 쟁점에 현격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4+1 협의안’ 백지화와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2대 악법 저지와 친문 3대 농단의 강력한 대여투쟁”(황교안 대표)을 주문하며 강경 모드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을 정하는 법안이다. 여야 합의 없는 일방처리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게 통과되더라도 엄청난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법은 사법 행정의 체계와 근간을 새로 세우는 중대 사안으로 한번 법을 만들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 여야 합의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는 이유다.

다만 여당이 “선거법 같은 게임의 룰은 여야 합의가 최선”(민주당 이해찬 대표)이라며 타협 가능성을 시사한 건 고무적이다. 신임 심재철 원내대표도 “협상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며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여야가 모처럼 조성된 대화 국면을 살려 협상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 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