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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용균 1주기…아직도 하루 한 명 떨어져 숨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1년 전 오늘 안타까운 생명이 허무하게 스러졌다. 석탄 운반 컨베이어 벨트에 이상이 없는지 몸을 내밀어 어두운 구석까지 살피던 청년이 그만 벨트와 롤러 사이에 끼여 숨졌다.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당시 24세의 김용균씨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엔 탄식과 반성이 일었다. 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해 내년 시행을 앞두고도 있다. 일명 ‘김용균법’이다.

산재 사고 근로자 전년보다 3300명 증가 #기업 안전 컨설팅과 결과 이행 의무화해야

그러나 실제 현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악화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사고로 산업재해를 입은 근로자는 6만9568명으로 1년 전보다 3272명(4.9%) 증가했다. 사망자가 667명에 이른다. 한 달에 약 75명이다. 하루 평균 한 명이 떨어져, 사흘에 한 명은 끼여서 목숨을 잃었다. 18~24세 35명은 피어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산재 사망률 OECD 부동의 1위’란 멍에를 벗을 조짐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이달 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조사에서도 어이없는 현실이 드러났다. 공공과 민간 대형 사업장 399곳의 안전·보건 실태를 불시 점검한 것이었다. 무려 77%인 306곳(원청업체 기준)이 시정지시를 받았고, 위반 정도가 심한 202개소는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한 발전소는 석탄을 나르는 벨트에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게도 김용균씨가 희생된 사업장과 똑같은 문제가 그대로 방치됐던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이 이런 실태를 낳았다. 고용부가 불시 점검해 부과한 과태료는 한 곳 평균 약 150만원에 불과하다. 안전조치를 이행하는 비용보다 과태료가 훨씬 싸다. 하청업체 근로자가 숨진 사건 한 건 당 원청업체 벌금이 432만원이라는 조사도 있다. 김용균법에서는 이런 경우 원청업체에 벌금을 최대 10억원까지 물릴 수 있도록 강화했다. 나아가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어제 보도된 인터뷰에서 “사망 양형 기준이 낮다. 법원에 의견을 내겠다”고 했다.

처벌보다 더 중요한 건 기업 자신의 변화다. 벌금·과태료가 적다고 하청 근로자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것은 기업 시민으로서의 기본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건 “생명보다 이윤을 탐낸다”는 비판뿐이다. 정부도 처벌 강화에만 골몰하지 말고 예방에 한층 신경써야 한다. 기업이 사업장 안전 컨설팅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컨설팅 결과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 등이다. 산재 사망사고의 93%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엔 이런 컨설팅과 이행 비용이 부담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 규모에 따라 일부를 정부가 도와주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희생을 최소화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열악한 근로자를 위해 국가가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친노조’가 아닌 ‘친노동’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