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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홍콩사태는 중국과 세계의 시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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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올해는 중국 건국 70주년이다. 현대 중국 70년은 격동과 비약의 두 말로 압축된다. 실로 경이로운 변화와 발전이다. 누천년을 함께 한 이웃나라의 재기와 번영에 축하를 보낸다. 같은 동아시아시민으로서 중국 인민들의 땀과 노고에도 따뜻한 위로를 드린다.

현대중국은 마오쩌둥 시대의 건국, 덩샤오핑 시대의 부국(富國), 시진핑 시대의 대국(大國)을 향한 3대 역사매듭이 선명하다. 마치 대하 같다. 그러나 대국·제국·천하는 물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인류의 보편가치에 비추어 오늘의 중국몽은 너무 빠르고 위험하다.

번영 이후 시진핑 중국은 유교와 공자와 민족주의로 돌아갔다. 이 가치들은 근대 중국 사유의 개창자 루쉰과 현대 중국의 건설자 마오쩌둥이 근대화와 변혁을 위해 가장 타파하려 했던 요소들이었다. 즉 심각한 후퇴다. 이들 가치로 과연 자유·민주·복지·평등·인권·민주주의를 향유하는 선진 중국 도약과 주변 국가 포용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근대 초기 도자기가 차이나(china)로 명명된 이유는 중국산품의 품격과 수준 때문이었다. 고유명사(China·중국)의 일반명사(china)로의 전변이었다. 특수의 일반화는 인간 마음을 얻는 보편가치 없이는 안 된다.

특히 건국 70주년을 맞아 격화되고 있는 홍콩 사태는 결정적인 갈림길로 보인다. 중국의 관점에서 홍콩은 반환 이전에는 치욕의 상징이었지만 두통거리는 아니었다. 반환 이후에는 치욕은 극복했지만 두통거리로 전환되었다. 내부는 외부보다 늘 더 어렵다. 자유와 빵을 함께 누렸던 홍콩시민들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구의회 선거 결과는 홍콩시민들의 명확한 의지표명이다.

중국은 너무 크고 너무 넓다. 또 사람도 너무 많다. 깊은 연구들이 중국을 ‘사실상의 연방제’로 보는 이유다. 단일 중앙집권이 불가능한 규모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번영은 지방을 존중할 때 가능했고 지방을 억압할 때는 반대였다. 중국에서 정치가 경세제민(經世濟民)인 이유는 자명하다. 초거대 규모 때문에 경국(經國) 대신 경세였고, 제민(制民) 대신 제민(濟民)이었다. 경세는 황제·중앙·정부의 역할이었고, 제민은 지방·각성(各省)·시장(市場)의 역할이었다. 단일집중에 의한 경국(經國)과 제민(制民)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따라서 홍콩에 대한 무력 탄압과 인명살상은 홍콩은 물론 중국을 위해서도 절대로 현책이 아니다. 즉 중국을 지탱해온 ‘사실상의 연방 제국’, ‘중앙-지방 공존’ ‘정치-경제 역할 분리’라는 세 특징을 갖는 ‘경세제민’의 중국역사에 대한 배반이다. 이웃과 세계의 마음 획득에서도 막대한 손해다.

첫째 중국경제를 위험하게 할 것이다. 홍콩의 혼란과 추락은 미중무역 갈등에 이어 중국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다. 둘째 지방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중국을 지탱해온 ‘중앙은 정치’, ‘지방은 경제’라는 오랜 공존관계가 깨진다. 셋째 중국특색의 민주주의가 허구라는 점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랑해온 유교적 평화공존도 허구가 될 것이다. 넷째 일국양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여 타이완과의 통일문제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홍콩은 물론 연접한 마카오, 선전(深圳), 주하이, 광둥성은 개방·시장·번영 중국을 이끈 상징지역들이다. 홍콩은 홀로 세계 30위권대 경제이고 1인당 GDP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 1억을 넘는 광둥성은, 성 하나가 러시아와 같은 12~13위권 규모다. 어떤 국민 국가보다 큰 경제 규모다. 근대 중국을 만든 기라성들 - 홍슈취안, 캉유웨이, 양치차오, 쑨원- 도 광둥성 출신들이다. 이들 없는 중국근대가 가능한가? 탄압도 배제도 안된다. 포용과 공존이 답이다.

살상과 탄압은 중국 주변국가들에게 주는 신호 역시 나쁠 것이다. 인권과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흡수한 한국·일본·타이완·동남아 민주국가들이 유교와 권위주의로 돌아갈 수는 결코 없다. 지금은 동서 조우 이전 중국이 천하 체제를 유지할 때와는 다른 세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중화 체제를 대체한 자유·인권·민주주의의 보편가치를 깊이 내화한 이들을 유교·공자·천하 사상과 질서로 다시 묶으려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인간 존엄과 보편 가치로의 더 많은 진화가 답이다. 매년 중국·일본 대학과 공동강의를 할 정도로 이웃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한 동아시아 시민의 진심어린 제안을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만약 세계가 중국의 경제력에 무릎을 꿇는다면 홍콩 사태가 던지는 인류의 보편가치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중국과 이웃나라들과 세계의 발전과 공존을 위해서도 불행이다. 홍콩 사태를 계기로 중국이 과거 중국그릇(China ware)을 넘은 도자기(china)처럼 보편수준으로 나아가 세계와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그럴 때 세계와 우리 이웃은 항상 함께 할 것이다. 홍콩사태는 번영 중국의 후퇴와 전진을 가를 일대 기회이자 시험대다. 중국은 지금 자유와 인간 존엄, 평화와 민주주의의 인류 가치를 위해 세계와 함께 할 때이다.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