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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모두 존중받고 있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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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혁진 소설가

이혁진 소설가

네 살짜리 딸을 둔 친구의 심각한 고민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자신을 빼닮아 까무잡잡한 피부에 영락없는 곱슬머리인 요 귀염둥이 딸내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 상황을 모면해보자 한 약속이 번번이 채무가 돼 돌아오는 탓이다. 석 달, 여섯달, 길게는 일 년 전의 것까지. 그럴 때는 누구를 닮았는지 대충 넘어가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대화를 끌고 가 나날이 또렷해지는 발음으로 기어이 묻고야 만다. 약속을 안 지키는 거냐고, 자기한테 거짓말을 한 거냐고. 친구는 결국 약속한 대로 지킬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않나. 말을 함부로 뱉은 것이 잘못이고 부모가 거짓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는 없으니. 약속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거짓 약속을 안 하자니 딸내미는 그야말로 상전이 됐다.

나, 우리 가정은 존중받고 있는가 #존중없는 사회 , 권위 우선시 돼 #공감·온정에 앞서 존중이 필요

데리고 다니다 보면 어떻게든 모면해야 할 상황은 많은데 거짓 약속을 못하니 그때마다 일일이 설명하고 양해와 허락을 구해야 한다. 약속한 것은 지켜주니 더 사소한 것들도 잊지 않고 소환해 대화의 전세를 뒤집는다. 먼저 함정을 파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슬그머니 묻는, 약속하는 거지? 물론 자기가 지켜야 하는 약속은 생떼를 써가며 안 지키려 든다. “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니까. 환장해요, 환장.”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다. 짐작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딸의 입장이 어떨지도 짐작해 본다. 만약 내 친구 같은 아버지가 있다면, 어리고 한 가족이라는 이유로 거짓말을 하고도 당연해하지 않고 아무리 허술한 것이라도 자신이 한 약속은 지키고 그것으로 존중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딸은 어떻게 자랄까?

좀처럼 상상이 안 간다. 사실 부모의 거짓 약속은 어쩔 수 없는 필요, 일상에 가깝지 않나. 한두 번 불평하면 귀여움과 관심을 받지만 그 이상 하면 철부지, 떼쟁이가 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으로서 느끼는 불합리와 불공정을 지적했다가는 버르장머리 없는 종자로 찍히고 불이익도 피할 수 없다. 회사는 어떨까? 뻔히 눈에 보이는 부정과 부조리도 남들이 하면, 해야 한다. 침묵할 때 함께 침묵하고 견딜 때 함께 견디지 않으면 조직생활 모르고 열정도 의리도 없는 족속으로 분류당한다. 고과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유쾌하지 않은 뒷소리도 들어야 한다.

모두 노력한다. 그렇게 분류당하고 취급당하지 않기 위해. 아이는 부모가 한 약속을 기억하지 않게 되거나 갑자기 철든 양 부모의 거짓 약속을 자신이 떼쓴 탓이라고 이해하려 든다. 학생은 아무리 우습고 이상한 선생의 지시나 교칙도 따르기부터 한다. 그러지 않는 친구들과는 멀찍이 떨어져 지내고, 반면 성적 좋고 평판 좋은 친구들과는 친해질 기회를 얻기 위해 애쓴다. 회사원은 유능하고 착실하며 열정적인 인재라는 평가를 받고자 분투한다. 개인적 일을 미루면서까지 하기로 한 것은 어김없이 해내며 자신보다 일과 회사의 입장을 먼저 헤아린다. 그리고 자신처럼 하면 되는 일을 하지 않는 동료들을 하찮고 무능력하게 여긴다. 권위와 규칙, 대세를 따르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그것에 따라 사람들을 가늠하고 판단한다. 자신과 동등한 회사원으로 존중하기 이전에.

존중받아본 적 없기 때문에 존중할 줄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권위와 규칙, 대세가 지정하는 가치를 우선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면이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찬찬히 더듬어 나가는 지점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는 당연한 과정에 주인공 김지영은 회사에서, 시가에서, 하다못해 공원과 카페에서조차 끊임없이 분류당하고 취급당한다. 존중받지 못한다.

단지 김지영만이 아니다. 김지영의 남편은 아내를 아끼고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정을 우선시 하면 당장 소득과 사회생활에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함께 헤쳐나갈 방법이 막막하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김지영 역시 남편을 무작정 탓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상의하고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그런데도 상황은 어려워지기만 한다. 현실이 그렇듯. 그리고 그 현실처럼 존중받지 못하고 위태로워지는 존재 역시 여자 김지영에 그치지 않고 김지영을 사랑하는 남편과 가정 전체가 된다. 영화는 여자 김지영에서 시작해 성별이나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 체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행히 영화 속 김지영의 가정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하지만 현실의 가정은 어떨까? 공감이나 온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호시절도 지나갔다. 이제는 근본적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우리와 우리의 가정은 존중받고 있는가?

이혁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