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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더 나은 세상 향한 역동적 이행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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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18년 6월 1일 일본의 반도 포로수용소에서 ‘독일군 포로들의 연주회’를 시점으로 한 일본, 같은 해 12월 31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평화와 자유에 바치는 콘서트’를 시점으로 한 독일,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송년 음악회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음악이 있다. 1824년 빈에서 초연된 이후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곡으로서, 바그너(1813~1883)가 “더 이상의 진보가 불가능하기에 교향곡을 쓸 권리가 그에 의해 소멸하였다”고 했을 만큼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바로 그것이다.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자필 악보가 악보로는 사상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2001)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위대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귀를 찢을 듯한 불협화음 뒤 절규 #“오! 친구들이여, 이 소리가 아닐세 #함께 기쁨 가득한 노래를 부르세”

이 곡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를 굳이 살펴보자면, ‘그 자체의 예술적 위대함’과 쉴러(1759~1805)의 시 ‘환희의 송가’에 의한 마지막 악장에 담긴 메시지를 들 수 있다. 뉴욕필하모니 창단 연주회(1846), 서울교향악단 창단 1주년 기념 연주회(1948) 등이 첫째 이유에 의한 것이라면, 바렌보임(1942~)의 서동시집관현악단에 의한 임진각 평화누리에서의 연주(2011)는 둘째 이유에 의한 것이라 하겠다. 냉전의 종식을 알린 베를린 장벽 붕괴 시 2차대전 참전국 연합오케스트라가 베를린에서 이 곡을 연주(1989)할 때 지휘자 번스타인(1918~1990)은 ‘환희’를 ‘자유’로 바꾸어 연주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쉴러가 이 시를 쓸 때 원제목이 ‘자유의 송가’였으나 빌헬름 3세의 검열 때문에 ‘자유’를 ‘환희’로 바꾸었다고 하지만 검증된 바는 없다. 어찌 되었든 번스타인은 “베토벤도 우리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라 했고 그 누구도 이에 토를 달지 않았다. 로맹롤랑(1866~1944)이 “인류애와 세계시민주의, 이성과 환희로 건설된 이 땅 위에 선포한 천국 복음”이라 극찬한 것도, 바그너가 “음악을 그 자체(의 요소)로부터 일반적 예술로 구원한 미래의 예술을 위한 인간적 복음”이라 한 것도 이 곡이 누구나 공감하고 간절히 희구하는 ‘자유와 화합’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메시지가 빈 회의 의장 메테르니히(1773~1859)의 반혁명주의, 반자유주의, 반민족주의 위협에 당당히 맞선 것과 다름없었기에 이 곡이 ‘절대적 자유를 향한 저항과 인류애를 통한 화합’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확고히 자리하고, 주선율이 유럽연합 국가로 지정(1985)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물론 나치와 마르크스 신봉자들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자들까지도 태평양전쟁 개전 1주년 기념 음악회(1942)에서 그 고귀함을 더럽혔음 또한 기억해야겠지만.

이제 메시지 이야기는 그만하고 음악적 측면에서 딱 한 가지만 짚어보자. 마지막 악장의 시작을 알리는 첫 울림은 실로 충격적이다. 서로 부딪히는 일곱 개의 음들이 큰소리로 빚어내는 엄청난 불협화음이 우리의 귀를 찢을 듯 달려든다. 그리고나서 베토벤은 베이스의 목소리를 빌어 절규하듯 이렇게 외친다. “오! 친구들이여, 이 소리가 아닐세! 우리 함께 즐거이, 기쁨이 가득한 노래를 부르세”(베토벤이 추가한 글). 당시의 양식상 감히 그 누구도 상상도, 용납도 할 수 없었던 ‘이 소리’를, 즉 자유와 화합의 대척점에 놓인 ‘억압과 불화’를 베토벤은 이렇게 끔찍한 불협화음으로 표현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협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견을 좁히지 못할 때 ‘불협화음이 발생하였다’라고 한다. 그래서 불협화는 극복해야 할, 가능하다면 이루지 말아야 할 관계로 인식된다. 하지만 우리가 즐겨듣는 음악에도 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수많은 불협화음이 포함되어 있다. 떨어져 있는 화음들 사이를 메우며 매끄럽게 지나가는 음, 화음의 변화를 나 몰라라 하며 고집스럽게 끌고 있는 음, 뻣뻣하고 투박한 선율에 생동감을 더하는 장식음, 다른 화음으로 바뀌었는데도 남아있는 음….  이렇게 화음 밖의 음들이 화음 안의 음으로 이행하며, 즉 불협화와 협화 사이를 오가며 한 곡의 음악은 그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불협화는 음악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수단이 된다.

불협화에 빗대어 본 갈등은 우리네 관계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한 집단이 지향하는 바를 성취하는 과정에 있어 불가결한 현상이다. 획일화되지 않은 주체적 자아들로 구성된 건강한 사회라는 반증이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역동적 이행과정이다. 다만 그 궁극적 지향점이 같다는 전제하에….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