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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세 빨리 도입해라”…분진 피해 60년 충북·강원 반발

중앙일보

입력

시멘트 공장. [중앙포토]

시멘트 공장. [중앙포토]

충북과 강원 주민들이 ‘시멘트세’ 부과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 법안은 연내 국회 본회의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3년 2개월을 끌어온 시멘트세 부과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시멘트 업계는 이중과세를 이유로 시멘트세를 반대하고 있다.

국회 시멘트세 도입 법안 논의 잠정 보류 #지자체 "공장 환경 전방위 관리 세금 필요" #시멘트 업계 "석회석에 연간 30억 더 못내" #주민들 "수박 겉핥기식 지원 피해 못막아"

균형발전지방분권충북본부는 시멘트세 연내 통과를 위해 조만간 강원·경북·전남 지역 대표들과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해 국회 항의 방문 등 단체 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1일 이철규 의원이 대표발의 한 지방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계속 심사하기로 했다. 행안위 소속 10명 중 9명이 이 법안 필요성을 언급했으나 전체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남은 국회 일정과 내년 총선을 고려할 때 연내 본회의 통과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멘트세는 그동안 등한시한 시멘트 제조공장 주변 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논의가 시작됐다. 지방세법을 개정해 시멘트 1t당 1000원의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는 방안이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11개 시멘트 업체는 연간 5740만t의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다. 이중 강원과 충북에 있는 시멘트 제조 업체 7곳에서 국내 시멘트의 93%를 생산하고 있다. 해당 법안이 통과하면 강원도는 약 270억원, 충북은 200억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돈으로 시멘트 공장 밀집지역 주민 건강 역학조사나 환경 저감시설 설치, 도로 파손 등 복구비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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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충북·경북·전남 지역 지역주민과 지방분권운동 관계자들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시멘트 지역자원시설세 신설을 위한 지방세법 개정안을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지방분권충북본부]

강원·충북·경북·전남 지역 지역주민과 지방분권운동 관계자들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시멘트 지역자원시설세 신설을 위한 지방세법 개정안을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지방분권충북본부]

시멘트세는 지역 주민과 지자체, 업계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주민들은 시멘트 공장 운영으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건강상 피해를 고려하면 시멘트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비록 시멘트 회사가 공장 인접 지역에 연간 100억원을 들여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으나, 미세먼지 피해나 지역 전체에 나타나는 외부불경제 효과를 막는 데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오태동(68) 에코단양 부회장은 “시멘트 공장에서 나오는 가스나 분진, 미세먼지 피해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업계 스스로 환경 저감 시설을 설치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며 “그저 세금을 더 걷어 보상을 받자는 게 아니라,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해 온 시멘트 공장 주변 환경개선 사업을 시멘트세를 투입해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멘트 업계는 현재 석회석에 대한 지역자원시설세를 이미 내고 있어 시멘트세는 이중과세란 입장이다. 또 내년부터 질소산화물 배출 부담금도 연간 450억~650억원에 달해 수익성 악화를 우려했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시멘트 제조 원료인 석회석에 대한 지역자원시설세로 연간 30억원을 내고 있다”며 “정치인들이 시멘트세를 요구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900억원으로 추정되는 석회석 지역자원시설세를 제대로 썼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종 충북지사(왼쪽)와 최문순 강원지사(오른쪽)가 지난 15일 전혜숙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만나 시멘트세 신설을 건의하고 있다. [사진 충북도]

이시종 충북지사(왼쪽)와 최문순 강원지사(오른쪽)가 지난 15일 전혜숙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만나 시멘트세 신설을 건의하고 있다. [사진 충북도]

시멘트 업계는 시멘트 수요가 하향세를 지속하고 있어 추가 세금부담은 어렵다고도 한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시멘트 수요는 1997년 6200만t까지 확대됐으나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이후 감소세를 보인다. 2017년 5670만t에서 지난해 5120만t, 올해 4850만t으로 추정된다. 내년엔 올해보다 6.2% 감소한 4550만t으로 예상했다. 이로 인해 시멘트 회사들은 지난 10년간 3181억원의 누계 영업손실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충북도 등은 시멘트세가 과도한 부담은 아니라고 했다. 충북도가 확보한 시멘트 업체 경영평가자료에 따르면 시멘트 생산량(2010년~2015년)은 연평균 4% 증가했고, 2013년 이후 영업이익률은 연평균 10% 정도다. 전도성 충북도 세정팀장은 “시멘트 업계 영업이익이 양호함에도 경영수지 악화를 이유로 시멘트세를 낼 수 없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시멘트세 도입에 앞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동해시 발한동 주민 최모(67)씨는 “시멘트세가 생기면 생산자 측에서는 일정 금액을 자치단체에 내야 하기 때문에 원가상승 요인이 된다”며 “시멘트를 쓰는 건축물, 구조물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생산자 측이 자치단체에 낸 만큼의 돈을 생산원가에 포함할 수도 있어 세율 조정 등 지자체와 업계 간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단양·동해=최종권·박진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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