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98명. 세계 유일의 0명대 출산율 국가가 됐다. 인구 전문가들은 한국의 극심한 저출산 현상이 이미 한 세대전인 1980~90년대 예견된 비극이라고 지적한다.
1990년 출생아 성비 116.5…"태아 성감별, 여아 낙태 성행 탓"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9월 인구동향 조사 결과 지난 3분기 전국 출생아 수는 전년 동기보다 6687명(8.3%) 줄어든 7만3793명이다. 지난해 4분기(7만4542명)에 세웠던 사상 최저 기록을 갱신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도 0.88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올해 출생아가 30만명을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올해 출생아 30만명을 넘을 것 같냐”는 질문에 “못 넘을 가능성이 있다. 출산과 결혼을 안 하는 경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국내 출생아 수는 2017년 40만명 아래로 떨어진데 이어 불과 2년 만에 또다시 10만명이 줄어들게 됐다. 지난해 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1명 아래로 떨어지며 충격을 안겼는데 올해는 그보다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저출산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젊은 여성의 수가 급감한 영향이 크다. 20~39세 여성은 1998년 824만4751명에서 2008년 760만489명으로 10년새 64만명 줄었다. 그 10년 뒤인 2018년엔 683만8873명으로 76만명이 또 줄어들었다. 20년만에 140만명이 감소했다. 특히 출산을 가장 많이 하는 세대인 30대 여성 수가 확 줄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현재 20~30대 여성이 태어난 1980~90년대 출생아 통계를 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인구학에서는 여아 100명 당 105~107명의 남아가 태어나는 것을 자연성비(자연적인 상태에서의 성비)로 본다.1980년대 초반 출생아의 성비는 자연성비에 가깝다. 그러다가 1984년(108.3)부터 이상 징후가 눈에 띈다. 성비는 꾸준히 올라간다. 유독 남아가 많이 태어나는 기현상이 계속 이어진다. 1990년 출생아의 성비는 116.5로 인구 총조사를 시작한 1970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다. 이때 성비 불균형은 경북(130.7), 대구(129.7), 경남(124.7) 등 영남지역에서 더 심했다. 셋째 이상인 출생아의 성비는 193.7까지 뛰었다. 여아가 100명 태어날 때 남아가 두배 가까운 194명이 태어났다는 의미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이에 대해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다. 또 초음파 검진 기기가 도입되면서 임신 초기에 태아 성감별과 여아 선별 낙태가 성행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정부는 산아 제한 정책을 폈다. 아이를 많이 낳는 부부를 ‘미개인’ 취급하고 다둥이 가족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과거에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임신-출산했지만, 하나만 낳으라고 강요하니 아들을 임신할 때까지 여러차계 낙태를 하는 이들도 상당했다.
30여년 전에 자행된 여아 선별 낙태가 지금의 초(超)저출산을 일으킨 단초가 된 셈이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아이를 가장 많이 낳을 것으로 기대하는 나이가 30세, 지금 1988년생이다. 그런데 88년엔 63만명이 태어났다. 82년에는 아이가 85만명 태어났는데 불과 6년 만에 20만명 가까이 출생아가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남아선호 때문에 여아는 더 적게 태어났다. 현재의 저출산은 이미 30년 전에 예고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30년 뒤 우리나라에서 태어날 아이도 정해져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나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 30만명 중 여아는 15만명이다. 이들이 30년 뒤 자녀를 낳는다고 보면 출생아 수는 15만명 아래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라며 “이 추세면 80년 뒤인 2100년 한국 인구는 1800만명으로 줄어든다”라고 전망했다.
1980년대 시작된 한국 출생아의 성비 불균형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다가 2005년 정상화됐다. 출산율이 1.08명까지 떨어져 우리 사회에 ‘1.08쇼크’를 안겼던 해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