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내 집이 짐 됐다” 건보료가 무서운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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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복지행정팀 기자

정종훈 복지행정팀 기자

이번 달 건강보험료가 인상되는 지역 가입자는 259만 세대다. 이들은 1년 새 소득과 재산 과표가 올랐다는 의미다. 매년 이맘때면 주택·토지 등 재산과 소득의 변동분을 건보료에 반영하는 게 연례행사다. 인상 세대가 지난해(264만)와 비슷하다. 경기 침체 여파로 소득 과표 증가율은 지난해보다 많이 떨어졌지만, 재산 과표 증가율(8.69%)은 껑충 뛰었다. 지난해에도 꽤 뛰었는데 올해는 더 뛰었다. 현 정부 들어 수도권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공시가격을 현실화해왔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는 직장인과 달리 재산에도 건보료를 낸다. 매년 11월 재산 때문에 홍역을 치른다. 이번에 전체 지역 가입자 758만 세대 중 34.2%의 건보료가 오른다. 서울에 사는 박모(63)씨는 “은퇴자는 돈벌이가 시원찮은데 보험료 몇천원 더 내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은 이런 불만에 귀를 닫고 괴상한 논리를 내세운다. 19일 보도자료에서 ‘보험료 증가 세대는 하위 1~5분위보다 중위층(6분위)부터 최상위 분위(10분위)까지 집중(72%) 분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단 관계자는 “재산과 소득이 어느 정도 있어야 변동하는 법이라 매년 중산층·상위층 보험료가 주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중산층 이상은 보험료가 매년 이렇게 올라도 된다는 것처럼 들린다. 공단 관계자는 “집을 새로 사지 않는 이상 극단적으로 보험료가 오를 일은 없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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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인상에 우리 집이 내 짐이 됐다. 보험료를 내리든지, 집값을 내리든지 해라.” 올초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이다. 재산 건보료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그나마 일본은 재산을 부과 대상에서 빼는 시·군·구가 크게 늘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 부과체계를 개편하면서 재산 비중을 줄였다고 하지만 아직 45%나 된다.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올해 집값 상승은 정부의 정책 실패 탓이 크다. 가만히 있는데 집값이 올라 건보료 부담이 늘어나는 걸 곱게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채밖에 없는 집값이 올랐다고 건보료를 더 내는 게 정상적인가. 소득은 그대로인데, 집 팔아서 건보료를 내야 할까. 게다가 내년 1월 건보료 정기 인상에 따라 3.2% 또 오른다.

정부는 올 초 집값 고공행진 때 “11월 건보료에 반영하는 비율을 줄이는 등의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리 반영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집값 잡아 왔다”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더 허망하게 들린다.

정종훈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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