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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곳에 '미세먼지 스파이' 심었다···하늘색 확 바뀐 베이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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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 유선욱]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 유선욱]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은 세계적으로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의 첫 번째로 '대기오염과 온난화'를 꼽았다. WHO에 따르면 매년 대기오염으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은 700만 명이나 된다. 한국인들도 미세먼지를 가장 심각한 환경 이슈로 꼽고 있다. 중앙일보는 미세먼지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7월부터 대기오염과 전쟁을 벌이는 세계 주요 도시를 찾아 그들의 고민과 노력을 취재했다. 

대기오염과 전쟁 - 도시 이야기 ②중국 베이징

지난 9월 11일 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동쪽으로 20분쯤 차를 타고 나가자 높이 솟은 굴뚝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이징에서 마지막까지 운영됐던 석탄화력발전소였다.

1999년에 건설된 화넝(華能) 베이징화력발전소는 해마다 800만t(톤)이 넘는 석탄을 태워 베이징 일대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해왔다.
하지만, 2017년 3월 석탄을 연료로 하는 발전기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현재는 천연가스(LNG)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화넝베이징화력발전소 앞 마을에서 주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이 발전소는 2017년에 석탄 사용을 중단했다. [사진 유선욱]

화넝베이징화력발전소 앞 마을에서 주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이 발전소는 2017년에 석탄 사용을 중단했다. [사진 유선욱]

발전소 주변으로는 새롭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
발전소 앞 전기 충전시설에는 전기 오토바이를 충전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발전소 인근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펑 씨(40)는 “예전에는 미세먼지가 심각해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는데, 석탄 발전소가 문을 닫은 뒤로는 공기가 좋아져서 살만하다”고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 중이던 또 다른 주민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하얀 먼지가 날아다녔는데 이젠 거의 안 보인다. 공기는 전보다 확실히 좋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미세먼지 간이측정기를 이용해 발전소 주변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를 측정해보니 ㎥당 18㎍(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으로 ‘보통(16~35㎍/㎥) 수준이었다.

화넝베이징화력발전소 앞 마을에서 간이측정기로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모습. [사진 유선욱]

화넝베이징화력발전소 앞 마을에서 간이측정기로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모습. [사진 유선욱]

쓰레기차까지 전기차로 교체 

베이징 천안문 광장 인근에서 전기로 운행되는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 유선욱]

베이징 천안문 광장 인근에서 전기로 운행되는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 유선욱]

베이징에서는 요즘 ‘푸른하늘 보위전(保衛戰)’이 펼쳐지고 있다. 말 그대로 미세먼지로부터 푸른하늘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정부가 베이징 내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한 건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베이징의 중심인 천안문 광장에서도 미세먼지와 전쟁으로 인해 달라진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장 곳곳에 설치된 쓰레기통을 수거하는 트럭에는 ‘Pure Electric Zero Emission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전기로 운행돼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쓰레기는 치우는 직원은 “시내에서 운영되는 쓰레기차는 거의 전기차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요즘 베이징 시내에서는 자동차 정비소도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대기오염을 발생시키는 소규모 시설들까지 베이징 외곽으로 강제 이동시켰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식당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를 잡으려고 과학원 안에 주방시설에 대한 집진장치를 갖다 놓고 연구를 하고 있어요.”

기자와 동행한 원영재 기후변화실천연대 대표(공학 박사)가 말했다. 중국 환경 전문가인 그는 2010년부터 재작년까지 베이징에 거주하기도 했다.

원영재 기후변화실천연대 대표가 베이징 미세먼지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유선욱]

원영재 기후변화실천연대 대표가 베이징 미세먼지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유선욱]

원 대표는 “지난해 북경시 정부 청사가 도심에서 시 외곽으로 이주를 완료했다”며“차량과 인구 밀도를 분산시켜 도심 내 대기오염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도시별 맞춤형 대책 내놔…“꼴찌 시장 공개 면담”

지난해 11월 26일 극심한 미세먼지로 인해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이 뿌옇게 보인다.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26일 극심한 미세먼지로 인해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이 뿌옇게 보인다. [중앙포토]

중국이 미세먼지와 전쟁을 벌이게 된 계기가 된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잿빛 하늘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주중 미국 대사관에서는 직접 초미세먼지를 측정해 데이터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 측도 처음에는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지만, 2012년부터 초미세먼지를 자체 측정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지 두 달 만인 2013년 1월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베이징을 덮쳤다.

1000㎍/㎥가 넘는 최악의 미세먼지를 경험한 중국 정부는 ‘미세먼지와 전쟁’을 선포하고, 환경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중국 환경과학원 내에 이른바 ‘워룸(War room)’으로 불리는 국가대기오염방지연합센터를 설치하고, 2000여 명의 학자를 동원해 지역별 미세먼지 원인을 추적 연구하고 그에 따른 맞춤형 대책을 내놨다.

리하이셩 중국 환경과학원장은 “도시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한 도시 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도시에 맞는 미세먼지 감축 정책을 펼쳤다”며 “(목표치를 주고) 꼴찌 한 도시는 시장이 국민 앞에서 공개적인 면담을 한다”고 말했다.

1000개 측정소 깔고 ‘핫스팟’ 집중 관리

2017년에 설치된 베이징 미세먼지 측정망. [베이징 환경 모니터링 센터]

2017년에 설치된 베이징 미세먼지 측정망. [베이징 환경 모니터링 센터]

그중에서도 베이징은 미세먼지와 전쟁에서 최전선에 서 있는 곳이다.

시 주석의 측근이자 환경보호부 부장(장관)을 지낸 천지닝은 2017년 5월에 베이징 시장으로 취임하면서 대기오염과 전면전에 나섰다.
천 시장은 시 주석, 리커창 총리, 리간지에 생태환경부 장관과 함께 푸른하늘 보위전을 이끄는 4인방으로 꼽힌다.

천 시장은 이후 베이징시에서 퇴출할 172개 업종을 발표하면서 연도별 퇴출 시한을 명시했다.
또, 내년까지 1000여 개의 제조업체를 시 외곽으로 옮기기로 했다.

베이징시가 미세먼지와 전쟁에 쓴 돈도 2009년 17억 위안(2816억 원)에서 2017년 182억 위안(3조 150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이 돈은 주로 석탄 보일러 교체, 노후차 및 오염기업 퇴출 등에 집중적으로 투입됐다.
시내 대기질에 대한 모니터링도 세밀해졌다. 현재 시 전역에는 1000개가 넘는 미세먼지 측정망이 깔렸다. 이를 통해 이른바 ‘미세먼지 핫스팟’으로 불리는 고농도 장소와 시간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베이징 내 325개 마을의 공기질을 평가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베이징시 환경과학원 고위 관계자는 “과학적 배치·평가의 원칙에 따라, 베이징시 전체 면적을 커버하기 위해 초미세먼지 측정 설비를 1000개 지점에 이미 구축한 상태”라며 “촘촘하고 정확하게 미세먼지 현황을 예측·분석하고, 시민들이 사전에 미세먼지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도 지난해부터 베이징처럼 미세먼지 측정망을 촘촘하게 까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간이측정기 인증제 등 규제에 막혀 설치가 지연되고 있다.
간이측정기는 지난 8일에야 처음으로 6개 제품에 등급 인증서가 발급됐다.

베이징 초미세먼지 5년 새 43% 줄어 

서울·베이징 미세먼지(PM2.5) 농도 변화.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서울·베이징 미세먼지(PM2.5) 농도 변화.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베이징에서 벌어진 미세먼지와 전쟁의 효과는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올해 초 발간한 ‘베이징 내 20년 대기오염 규제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징의 미세먼지(PM10) 농도는 1998년에서 2017년 사이에 55.3%가량 감소했다.

초미세먼지 농도 역시 2013년에는 연평균치가 89.5㎍/㎥로 ‘매우 나쁨(76㎍/㎥~)’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51㎍/㎥로 43%가량 줄었다. 서울과 농도 격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유영숙 한중 대기질 공동연구단장은 “공장이나 오염원 이전이 마무리되면서 올해 3월 베이징 미세먼지의 조성을 분석한 결과, 황산화물의 함량이 상당히 낮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최근에는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면서 화물차나 건설기계 등 고배출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도 베이징의 미세먼지 개선 수치를 근거로 들며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리간지에 중국 생태환경부 장관은 지난 4일 한국을 방문해 “우리는 (미세먼지) 오염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고, 풍부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베이징의 초미세먼지가 지난해에 12.1%, 올해는 10.9%가량 줄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베이징 주변 미세먼지 여전히 심각해

베이징 하늘을 덮은 미세먼지.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은 서울에 비해서는 오염도가 높다. 천권필 기자

베이징 하늘을 덮은 미세먼지.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은 서울에 비해서는 오염도가 높다. 천권필 기자

하지만, 베이징이 푸른 하늘을 되찾았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른 게 사실이다.
여전히 베이징의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의 두 배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실제로 취재팀이 베이징에 머물던 9일 초미세먼지 농도는 오전 한때 ‘매우 나쁨’ 수준인 112㎍/㎥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날 시내에서는 9월인데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특히, 베이징 주변 지역에 오염시설이 여전히 많다 보니 외부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도 적지 않다.
2017년 기준으로 고농도 발생 시 외부 요인이 55~75%에 이를 정도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추·동절기 동안 징진지(베이징-톈진-허베이)와 주변 지역 28개 도시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전년보다 오히려 6.5% 증가했다. 이들 도시의 중(重)오염 일수 합계 역시 총 624일로 2017년(456일)보다 36.8%가량 늘었다.

중국 측 전문가들도 "5개년 마지막 해인 2017년에는 강력한 단속과 규제로 목표를 초과 달성한 뒤 지난해 단속이 느슨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산업계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단속을 느슨하게 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최근에는 베이징 등 대도시 중심의 미세먼지 감축 정책이 지방의 오염도를 높이는 부작용을 불렀다는 중국 연구진의 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 생태환경부는 올해 추·동절기에 징진지와 주변 지역 28개 도시의 초미세먼지를 4% 낮춘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강도 높은 시즌제 대책을 내놨다.

524만 가구의 난방 에너지를 석탄에서 가스·전기로 전환하고, 고농도 발생 시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30% 줄이기 위한 긴급 감축 리스트를 구축하기로 했다.

원 대표는 “앞으로도 오염물질 배출시설에 대한 강제 이주를 지속하는 등 베이징의 환경 규제는 점점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은 깨끗해졌다는데 서울 하늘은 왜? 

중국 소각로 위치와 지역별 소각용량. 각 성의 소각 용량(t/일)에 따라 색깔을 달리했다. 한반도와 가까운 중국 동해안에 소각시설이 밀집된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환경과학기술 논문(2018)]

중국 소각로 위치와 지역별 소각용량. 각 성의 소각 용량(t/일)에 따라 색깔을 달리했다. 한반도와 가까운 중국 동해안에 소각시설이 밀집된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환경과학기술 논문(2018)]

중국 베이징의 초미세먼지는 크게 개선됐지만,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23㎍/㎥에서 올해는 26㎍/㎥로 악화할 상황이다.

이를 근거로 중국 정부는 "한국에서는 미세먼지가 중국 탓이라고 하는데, 중국 탓이 아니고, 한국 자체에서 배출된 오염 탓"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외면하는 부분도 있다.

우선 중국 대도시는 대기오염이 개선됐지만, 소도시나 농촌 지역은 대도시만큼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구나 선박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에는 400개가 넘는 항구가 있고, 전 세계 10대 항구 중에서 7개가 중국에 있다.

중국도 항구 내에서는 선박의 오염물질배출을 규제하지만, 항구에 정박한 상태가 아닌 서해를 오가는 선박에서 내뿜는 오염물질 규제는 느슨하다.
중국의 컨테이너 처리량은 2014년 기준 2억240만TEU(컨테이너 단위)로 전 세계 25%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 어선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도 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기술'에 게재된 논문을 보면 중국 어선들이 배출하는 미세먼지가 2012년 기준으로 6만1800톤, 이산화질소가 37만9000t 수준이라고 추산됐다.

서해에서 내뿜는 오염물질은 편서풍 탓에 중국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한반도에는 영향을 준다.

중국 네이멍구의 농촌 들녘. 강찬수 기자

중국 네이멍구의 농촌 들녘. 강찬수 기자

농촌 암모니아도 미세먼지 원인이다.

중국의 드넓은 농경지에 뿌려진 액비 등에서 대기로 배출된 암모니아가 한반도로 날아오면서 다른 물질과 반응해 미세먼지로 뭉치기도 한다.

중국 베이징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지에 제출한 논문에 따르면 2008년 중국에서 배출한 암모니아의 양은 1170만t으로 한국 수도권에서 배출되는 양의 200배가 넘는다.

정진상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책임연구원은 지난 9월 26일 한국과학기자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중국의 암모니아 농도는 2011~2015년 65% 증가했는데, 중국 암모니아 유입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최근 도시 고형 폐기물(MSW) 소각시설이 급증한 것도 문제다.
중국 난징대와 미국 애틀랜타대 연구팀 지난해 ‘환경과 기술’에 게재한 논문을 보면, 중국에서는 최근 경제성장과 도시화, 생활 수준 향상에 따라 도시 고형 폐기물 배출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폐기물 자체를 감량화해 토지를 아낄 수 있고,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어 소각 처리를 장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0년 104개였던 MSW 소각로는 2015년 220개, 2016년 249개로 늘어났고, MSW 소각 처리 비중도 40% 수준으로 늘어났다.

특히, 장쑤 성·저장·광둥·산등성 등 한국에 가까운 중국 동해안 지역에 상대적으로 많은 소각시설이 몰려 있다. 도시와 인구가 집중된 탓이다.
이처럼 매립하던 쓰레기를 소각하면 당장 미세먼지나 질소산화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베이징=천권필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feeling@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대기오염 전쟁, 도시 이야기> 관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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