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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가스실"···미세먼지 지옥 그 예언이 적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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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짙은 스모그가 낀 인도 뉴델리 거리를 마스크를 쓴 시민이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

지난 3일 짙은 스모그가 낀 인도 뉴델리 거리를 마스크를 쓴 시민이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

인도 뉴델리 시내. 지난 9월에도 도시가 옅은 연무로 덮여 있다. [사진 한용수]

인도 뉴델리 시내. 지난 9월에도 도시가 옅은 연무로 덮여 있다. [사진 한용수]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은 세계적으로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의 첫 번째로 '대기오염과 온난화'를 꼽았다. WHO에 따르면 매년 대기오염으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은 700만 명이나 된다. 한국인들도 미세먼지를 가장 심각한 환경 이슈로 꼽고 있다. 중앙일보는 미세먼지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7월부터 대기오염과 전쟁을 벌이는 세계 주요 도시를 찾아 그들의 고민과 노력을 취재했다.

대기오염과 전쟁 - 도시 이야기 ①인도 뉴델리

#. 무겁고 텁텁한 공기에 눈은 따갑고, 숨이 막혔다. 지난 9월 2일 오후 차량과 인파가 뒤엉킨 인도의 수도 뉴델리 시내는 미세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함께 길을 나선 현지인 아비나브는 “겨울철에 비하면 뉴델리의 9월 공기는 깨끗한 편이라 괜찮다”고 안심시키면서도 “정부가 노후 차량의 뉴델리 진입을 막거나, 공사장 물뿌리기와 같은 먼지 감소 조치 등 여러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월 말 디왈리 축제가 시작되면 엄청난 양의 폭죽을 터뜨려 인도 도시는 거대한 연기에 휩싸인다”며 “축제 이후 날이 추워지면서 난방과 취사를 위해 쓰레기를 태우면서 대기오염이 극심해진다”고 설명했다.

#. 지난달 25~29일 진행된 올해 디왈리 축제로 인해 지난 1일 뉴델리 일부 지역에서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당 743㎍(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을 기록했고, 3일에는 1000㎍을 오르내렸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안전기준 25㎍/㎥을 40배나 초과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가스실(gas chamber)'가 됐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37개 항공편이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우회했다. 급기야 인도 대법원은 "이는 문명국가에서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를 향해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는 장기 로드맵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뉴델리 주 정부는 차량 홀짝제와 일주일간 건설공사 중지에 이어 임시 휴교령도 내렸다. 학생들에게는 500만개의 마스크도 배포했다. 아비나브의 예언이 불행히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뉴델리, 62개 수도 중 미세먼지 최악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 수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 수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뉴델리는 전 세계 주요 국가 수도 중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도시다.
글로벌 대기오염 조사기관인 에어 비주얼(Air Visual)이 지난해 전 세계 수도의 초미세먼지 오염도를 분석한 결과, 뉴델리의 연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당 113.5㎍으로 조사대상 62개 수도 가운데 가장 나빴다. 서울은 ㎥당 23.3㎍으로 27위를 기록했다.

에어 비주얼은 인도 대기오염의 심각성이 ▶교통수단의 배기가스 ▶화전 ▶산업공장 배출 등을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미세먼지 간이측정기로 인도 뉴델리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했더니 서울의 10배에 육박하는 수치가 나왔다. [사진 한용수]

미세먼지 간이측정기로 인도 뉴델리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했더니 서울의 10배에 육박하는 수치가 나왔다. [사진 한용수]

지난 9월 2일 뉴델리 시내에서 중앙일보가 직접 측정한 초미세먼지 농도는 ㎥당 124㎍였다.
같은 날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13㎍/㎥였다. 뉴델리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서울보다 10배 가까이 높았다.

5000t 폭죽 때문에 대기질 최악으로 변해 

인도의 대기 질은 인도 힌두교 최대 명절인 디왈리 축제를 기점으로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다. 뉴델리는 해마다 10~11월에 있는 디왈리를 전후해 대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엄청난 양의 폭죽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무분별한 폭죽 사용을 규제하고 있지만, 디왈리는 빛이 어둠을 이긴 것을 축하하는 축제다. 이 때문에 인도인은 디왈리 때 더 많은 빛을 밝히면 더 큰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디왈리 축제에 뉴델리에서만 5000t의 폭죽이 사용됐다.

뉴델리에 있는 ‘청정공기프로그램(NCAPㆍNational Clean Air Program)’ 본부에서 만난 사텐드라쿠마르 대변인은 “인도는 PM10(지름 10㎛ 이하인 미세먼지), PM2.5( 지름 2.5㎛ 이하인 초미세먼지) 등 다양한 오염원을 종합해 자체적으로 인도 AQI를 측정한다”면서 “AQI 지수는 201~300은 ‘나쁨’, 301~400의 경우 ‘매우 나쁨’, 401 이상은 ‘심각’으로 분류한다”고 설명했다.

대기오염 관련 사망자 年 124만 명

지난해 11월 18일 아침 하프 마라톤대회가 열린 인도 뉴델리 시가지가 스모그로 덮여있다. [로이터=연합]

지난해 11월 18일 아침 하프 마라톤대회가 열린 인도 뉴델리 시가지가 스모그로 덮여있다. [로이터=연합]

뉴델리의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엄청난 양의 폭죽이 터지는 디왈리 이후 추수를 끝낸 농부들은 11월 중순 시작되는 파종기까지 거대한 면적의 논밭을 불태운다.
여기에 날이 추워지면서 도심 빈민가에서 난방과 취사를 위해 타이어, 플라스틱 폐기물 등 각종 폐자재도 태운다.
또 노후 경유차에서 나오는 매연에 각종 건설현장에서 뿜어지는 먼지까지 더해진다. 지리적 원인도 있다.

봄철 인도 북서부 사막지대에서 일어난 모래폭풍이 서풍을 타고 뉴델리로 날아오는 데다가, 건조한 날씨로 뉴델리 인근 지역 산악지대에서 크고 작은 산불도 이어지면서 뉴델리는 ‘가스실’로 변한다.
뉴델리가 최악의 대기오염 수도란 오명을 쉽게 벗지 못하는 이유다.

이처럼 심각한 대기오염은 인도 국민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
인도 의학연구위원회(ICMR)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인도의 대기오염 관련 질환 사망자 수는 124만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사망자 수의 12.5%로 사망자 8명 가운데 1명이 대기오염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대기오염이 흡연을 제치고 인도 사망 원인 1위에 올랐으며, 13억 5000만명의 인도 인구 가운데 76.8%가 심각한 대기오염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5년 안에 미세먼지 30% 줄이는 게 목표”

지난 3일 짙은 스모그가 깔린 인도 뉴델리 시내에서 차량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

지난 3일 짙은 스모그가 깔린 인도 뉴델리 시내에서 차량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

인도의 대기오염은 급격한 경제 성장의 그늘이다.

인도 정부는 날로 심각해지는 대기오염과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자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미세먼지 수치 감축을 위해 올해 1월 인도 정부는 NCAP를 출범했다.
이 프로그램은 총리 주관의 기후변화 위원회가 지난해 3월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 행동계획’에 근거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인도 NCAP의 니디 카레 국장. [사진 한용수]

인도 NCAP의 니디 카레 국장. [사진 한용수]

지난 9월 2일 뉴델리에서 만난 NCAP의 니디 카레 국장은 “우리는 대기오염과의 전투(Battle)를 위한 조직”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전국 102개 주요 도시의 공기 질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대기오염에 대한 인식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서 “대기오염의 방지와 통제, 저감을 위한 포괄적인 정책을 시행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2024년까지 PM 2.5, PM 10 농도를 2017년 대비 20~30%까지 감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NCAP는 전력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석탄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해나가는 한편 2022년 말까지 모든 화력발전소에 오염방지 장비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천연가스 사용을 촉진하고, 고체 연료에 대한 배출 기준 강화, 차량 내연기관 대기오염 물질 배출 규제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인도의 대기오염 전쟁은 중앙오염통제위원회(CPCB)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뉴델리에서 만난 CPCB의 프라샨트가르가바 박사는 “뉴델리의 경우 일부 시내버스 지붕에 공기 정화 필터를 부착해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며 “또 교통이 혼잡한 주요 교차로에 대형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쓰레기 불법 소각이나 건설 현장 단속을 통해 공기 질을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 CPCB의 프라샨트 가르가바 박사. [사진 한용수]

인도 CPCB의 프라샨트 가르가바 박사. [사진 한용수]

그는 또 “여기에 델리 주 정부는 겨울을 앞두고 펀자브, 하리아나 주 등 인근 주 정부에 논밭 태우기를 막아달라는 요청을 하는 등 다각도로 대기오염과의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며 “디젤 차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기 질이 안 좋은 기간 차량 홀짝제를 운용한 것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CPCB측은 2016년의 경우 1월 1일~8월 26일 사이 공기가 깨끗한 날이 74일에 그쳤지만 이런 노력으로 인해 2017년 같은 기간엔 113일, 2018년엔 118일로 늘었다고 밝혔다.

9월부터 노후 차량 운행에 대한 카메라 단속을 시작한 델리 주 정부는 10월부터 3000대의 전기버스를 공급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공짜 버스 정책을 시행한다.
또 델리 주 내에 150만 대에 달하는 오토릭샤(택시)를 천연가스와 배터리 차량으로 교체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공기청정기 시장도 급성장 

인도 뉴델리 오토릭샤. [사진 한용수]

인도 뉴델리 오토릭샤. [사진 한용수]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기오염과의 전쟁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해마다 대기오염과 관련한 수많은 대책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체계적이지 않고, 대응조치가 법제화되지 않아 집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도정책연구소는 “정부가 농업 지역 및 주거 지역을 배제하고 도시 차원에서만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며 “대기오염 발생 원인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방안 없는 단편적 대책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도가 세계에서 최악 수준의 대기오염으로 신음하면서 현지 공기청정기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인도의 현지 기업들은 그동안 대기오염에 대한 인식이 낮아 공기청정기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향후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인도 뉴델리 전경. [사진 한용수]

인도 뉴델리 전경. [사진 한용수]

실제로 인도상공회의소연합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가정용 공기청정기 시장은 연평균 29%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연간 1400만 달러 수준인 가정용 공기청정기 시장이 4년 뒤엔 3900만 달러로 3배 가까이 커진다는 것이다.

인도는 가정용 공기청정기를 100% 수입한다. 이마저도 외국인 주재원이나 대사관과 같은 해외 공관이 주 고객이다. 일반 인도 가정의 공기청정기 보급률은 집계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뉴델리의 거리에선 대기 질이 안 좋아도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처럼 대기오염에 무신경한 탓에 공기청정기는 상류층이 사용하는 사치품이란 인식이 강하다. 그러다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중산층의 확산 ▶대기 오염 악화 ▶전력 공급 안정화 등으로 공기청정기의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다.

인도 오리엔탈 마케팅사의 디팍 셰티 이사. [사진 한용수]

인도 오리엔탈 마케팅사의 디팍 셰티 이사. [사진 한용수]

뉴델리에서 3년 전부터 공기청정기 수입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오리엔탈 마케팅사의 디팍셰티 이사는 “인도에서 2년 전부터 현지 언론을 통해 대기오염의 위험성 이슈가 부각되면서 인도인의 관심도 자연히 높아지고 있다”며 “현재 삼성과 LG를 비롯해 전 세계 70개 이상의 공기청정기 브랜드가 인도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공기청정기 사업을 시작한 이후 매년 100% 이상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다”며 “인도 정부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자연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향후 10년은 대기오염과 관련한 비즈니스가 지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동종인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한국-인도 양국 협력을 강화하면 한국의 자동차 매연 저감 장치(DPF)나 석탄화력발전소 오염 저감 설비, 굴뚝 측정 장비(TMS) 기술과 운영 경험을 인도 대기오염 해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델리(인도)=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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