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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세계 최대 독수리 월동지 ‘파주 장단반도’ 비상…ASF로 먹이 주기 중단

중앙일보

입력

천연기념물(제243-1호) 독수리의 세계 최대 월동지인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 내 장단반도에 비상이 걸렸다. 민통선과 북한 접경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 방지를 위해 독수리 먹이 주기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과 3㎞ 떨어진 장단반도에는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독수리 700∼1000마리가 몽골에서 날아와 겨울을 난다. 장단반도는 한국전쟁의 포성이 멎은 뒤 농사짓는 사람 등을 제외하고는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군 작전지역이어서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

파주시 장단반도 DMZ 내 독수리 서식지에 날아든 독수리. [중앙포토]

파주시 장단반도 DMZ 내 독수리 서식지에 날아든 독수리. [중앙포토]

문화재청, 독수리 먹이 주기 중단 요청

문화재청은 4일 “최근 전문가 자문회의 결과 멧돼지 등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독수리가 ASF 확산의 매개체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며 “이에 따라 한국조류보호협회 측에 독수리 먹이 주기 중단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내용의 협조요청 공문을 독수리 먹이 주기가 이뤄지는 경기 파주, 강원 철원, 경남 고성·산청·김해 등 지자체에도 곧 보낼 방침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파주 독수리 월동지 등에 대한 먹이 주기 중단 조치는 농림축산검역본부의 ASF 감염 및 전파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다음 달 중순까지 먹이 주기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뒤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독수리 먹이 주기 중단에 대한 지속 여부를 다시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민통선 주민들 “찬성”, 조류보호협회는 “우려” 

이와 관련, 파주 민통선 주민들은 찬성하는 반면 조류보호협회 측은 반발하고 있다. 파주시 민통선 마을인 통일촌의 이완배 이장은 “민통선 지역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잇따라 검출되는 상황인 만큼, ASF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독수리에 대한 먹이 주기는 중단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반면 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은 “독수리 먹이 주기가 중단되면 먹이 부족으로 인한 탈진으로 독수리의 떼죽음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세계적 희귀조류인 독수리가 먹이 주기 중단으로 떼죽음 당하게 되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민통선 내 월동지에서의 먹이 주기가 중단되면 독수리들이 먹이를 찾아 민통선을 벗어나 전국의 양돈농장 주변으로 날아들면서 오히려 질병을 전파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파주 장단반도 내 독수리 월동지 위치도. [중앙포토]

파주 장단반도 내 독수리 월동지 위치도. [중앙포토]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진현리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이번 폐사체는 지난 1일 오전 7시쯤 군부대가 철책을 수색하다 발견해 신고했다. 이에 따라 멧돼지 폐사체의 ASF 검출은 현재 접경지역에서만 20번째로 늘었다. 철원 원남면에서는 이번이 7번째다.

세계적인 희귀조인 독수리가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월동지에서 날아다니고 있다.김경빈 기자

세계적인 희귀조인 독수리가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월동지에서 날아다니고 있다.김경빈 기자

민통선 일대 멧돼지 20마리 폐사체서 바이러스  

이 가운데 경기도 연천군과 파주시의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 안팎에서는 지난달 2일부터 31일까지 야생 멧돼지 13마리의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와 함께 파주에서는 지난 9월 17일 연다산동에서 국내 처음 ASF가 발병한 뒤 지난달 3일 문산읍까지 5곳의 양돈농장이 확진 판정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4일 ASF 차단 방역을 위해 파주지역 111개 농가의 돼지 11만538마리를 전량 수매하거나 살처분 조처했다.

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독수리=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서식한다. 동물의 사체를 먹어 ‘야생의 청소부’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수릿과 조류 중 덩치가 큰 맹금류를 흔히 ‘독수리’로 통칭하지만, 엄밀하게는 서로 다른 종(種)이다. 가령 ‘미국 독수리’는 흰머리수리를 말한다. 수릿과 조류 중 독수리·검독수리·참수리·흰꼬리수리 등 4종류가 천연기념물(제243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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