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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 안 받겠다했지만···文, 야당 대표 조문은 거절 못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이틀째 부산 남천성당에 차려진 어머니 고(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를 지켰다.

전날 이호철은 만났지만 #양정철·김경수 안 만나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 마련된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 마련된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 청와대]

“제가 때때로 기쁨과 영광을 드렸을진 몰라도 불효가 훨씬 많았다. (어머니는) 특히 제가 정치의 길로 들어선 후로는 평온하지 않은 정치의 한복판에 제가 서있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까지 가슴을 졸이셨을 것이다. 슬픔을 나눠주신 국민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새벽 망모(亡母)를 그리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날 오전까지도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르겠다는 문 대통령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거절됐다. ‘주변에 폐를 끼칠 수 있으니 최대한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겠다’는 문 대통령 의사가 워낙 강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이날 공개한 사진에서 문 대통령은 어머니 영정 앞에서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은 다만 둘째날에도 정계와 종교계에서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자 일부 조문객은 거절하지 못했다. 전날까지 상주인 문 대통령과 대면한 인사는 40년 지기이자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유일했다.

문 대통령은 오전 10시 40분쯤 정치인 가운데 처음으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 조문을 받았다. 부인 민혜경 여사, 박주현 수석대변인과 함께 빈소를 찾은 정 대표는 앞서 들어간 7대 종단 인사들의 조문과 연도(위령기도)가 끝나기까지 25분간을 밖에서 기다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문 대통령이 “오래 기다리셨으니 뵙겠다”고 해 5분 동안 조문이 이뤄졌다. 이어서 오후 1시 20분쯤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오후 2시 30분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윤소하 원내대표가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이 정동영 대표 조문을 받은 뒤론 다른 야당 정치인들의 조문을 마냥 거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야당이 조문하러 오지 않아도 비판이 일고 문 대통령이 조문을 받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적 입장은 다르지만 빈소까지 발걸음 한 정당 대표를 그냥 돌려보내서야 되겠느냐는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영민 비서실장도 전날 전화로 조문이 가능한지를 묻는 손학규 대표에게 “원칙적으로 정치인의 조문은 받지 않지만, 그래도 오시면 어떻게 거절하겠나”라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 마련된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를 조문한 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 마련된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를 조문한 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는 이날 오후 6시30분쯤 빈소를 찾았다. 15분간 빈소에 머무른 황 대표는 이후 취재진과 만나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마음은 다 동일할 것이다. 저도 내려오면서 어머니 돌아가실 때 기억이 났는데, 문 대통령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며 “대통령께서 ‘먼 곳에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황 대표는 ‘정국 현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이런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물론 그런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이날 오후 7시45분쯤 빈소를 찾았다.

반면, 오후 8시쯤 빈소 입구에 다다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민주당 소속 김경수 경남지사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들을 제외하곤 최측근이라 하더라도 정치권 인사는 만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앞서 오후 4시11분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도 검은색 재킷에 정장 차림을 하고 빈소에 도착했다. 권 여사는 오후 5시쯤 밖으로 나와 주영훈 대통령 경호처장 등과 악수를 한 뒤 빈소를 떠났다. 오후 5시20분부턴 일본·러시아·중국·미국 순으로 한반도 주변 4강 주한 대사들이 차례로 조문을 했다. 현장에 있던 청와대 관계자는 “대사관에서 조문을 오겠다고 하니, 대통령이 외교 사절들 조문은 받겠다고 했다. 한 사람당 5분 정도씩 대화를 나눴다. 주변 4강 외에 다른 외교사절 방문은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종교계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를 지낸 오충일 목사와 보수 개신교 원로인 김장환 목사 일행도 오후 7시55분쯤 빈소를 찾았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빈소 입구까지 쫓아 나오면서 ‘식사하고 가시라’고 챙겼지만 이를 만류했다.

당·정·청에선 이낙연 국무총리가 유은혜 사회부총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이날 오후 6시50분께 빈소를 찾았다. 이 총리는 “식사하는데 대통령께서 옆에 계셔 주셨다. 몇 가지 보고를 드렸고, 아프리카 돼지열병과 일본관계도 말씀을 약간 나눴다”고 말했다.  김상조 정책실장도 청와대 참모진을 대표해 이날 오후 8시40분쯤 빈소를 다녀갔다. 문 대통령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은 오후 9시37분쯤 홀로 빈소를 찾았다. 약 30분 간 머문 윤 실장은 ‘안에서 무슨 말씀을 나눴느냐’ ‘총선 관련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한 뒤 차량을 타고 떠났다.

문 대통령 일행은 이날 오후 10시 30분쯤 성당을 떠났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 등은 31일 오전 10시 30분에 열리는 강 여사의 장례미사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장례미사 이후 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의 하늘공원에 안장된다.

위문희 기자, 부산=하준호·이은지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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