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발생한 주한 미국 대사관저 침입사건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주한 외교 공관의 경호를 책임지는 민갑룡 경찰청장이 “죄송하다”(23일 자유한국당 긴급간담회)고 했지만,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종합국정감사에선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섭섭함을 말했다. 정부 당국 누구도 미안함을 표명한 적이 없다더라”(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지적까지 나왔다.
사건 당일 마침 청와대 녹지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주한외교단 초청 행사에 참석 중이던 해리스 대사를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에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까지 따로 만나 유감을 표했는데도 충분치 않은 모양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이런 ‘엄중한 상황 인식’을 보고 있자니, 석달 전인 7월22일 주부산 일본 총영사관에서 발생한 기습 시위 사건이 떠오른다. 대학생 7명이 총영사관의 도서관에 있다가 갑자기 마당으로 뛰어나와 일본의 경제 보복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담장에 플래카드를 걸려 했다.
일반인도 이용 가능한 도서관에 출입증을 받아 미리 들어가 있다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한다. 한ㆍ일 교류 관련 자료를 제공해온 도서관은 현재 휴관 중이다.
외교부 대응은 묘하게 달랐다. 미 대사관저 시위에 대해서는 즉각 출입기자단 전체에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우려를 표하는 입장을 전파했지만, 일본 총영사관 사건 때는 문의하는 언론사에만 입장을 알려주는 식으로 대응했다. 강 장관이나 민 청장 등 고위 당국자의 유감 표명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미 대사관저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일사천리다. 21일 피의자 일부가 구속됐고, 25일엔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도압수수색했다. 반면 일본 총영사관 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이뤄졌다. 석 달이 넘었지만 이제 송치가 이뤄졌을 뿐 아직 공소 제기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월담은 아니더라도 일본 총영사관 사건도 엄연한 ‘건조물 침입’이다. 하지만 이처럼 다른 분위기는 정부가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국내 여론 악화 등을 의식해 로키로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관계의 부침과 상관없이 외교 공관 보호는 정부의 의무이자 한국의 국제 신인도와 직결되는 문제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22조는 “공관 지역은 불가침이며, 접수국은 어떤 침입이나 손해에 대해서도 공관 지역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미 국무부가 미 대사관저 사건 직후 한국 정부에 자국 공관뿐 아니라 ‘모든 주한 외교 공관’에 대한 보호 노력을 강화하라고 촉구한 데서 뼈가 느껴지는 것은 기자뿐일까.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