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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돈·기업 한국 떠난다] 가업상속공제가 오히려 족쇄…적자 나도 폐업 못하고 직원 못 줄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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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효성은 베트남 동나이성 연짝 공단에 베트남법인과 동나이법인을 두고 있다. 축구장 90개 크기인 120만㎡ 부지에서 스판덱스·타 이어코드·스틸코드 등 핵심 제품을 생산한다. 효성 베트남 공장의 직원이 스판덱스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 효성그룹]

효성은 베트남 동나이성 연짝 공단에 베트남법인과 동나이법인을 두고 있다. 축구장 90개 크기인 120만㎡ 부지에서 스판덱스·타 이어코드·스틸코드 등 핵심 제품을 생산한다. 효성 베트남 공장의 직원이 스판덱스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 효성그룹]

“기업인의 의욕을 꺾는 고율의 상속세를 대폭 낮춰 기업의 기를 살려주고 투자 활성화를 끌어내야 합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4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이렇게 건의했다.

상속세 깎아주는 대신 조건 많아 #중도 폐업 땐 가산세까지 물어야 #기업 354만곳 중 한해 91곳만 이용

상속 제도 개선은 중소기업계의 숙원 사업 중 하나다.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제외해도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이 50% 수준에 달한다. 재계에선 높은 상속세 등으로 가업 승계가 막혀 해외로 재산을 은닉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1999년부터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까다로운 사전 및 사후 조건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 가업상속공제는 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을 상속할 때 20년 이상 경영하면 상속세를 최대 500억원 깎아 주는 제도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 제도를 활용해 가업을 상속한 경우는 매년 100건을 넘지 못한다. 이 제도 활용 기업이 가장 많았던 2017년에도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이용한 기업은 91곳에 그쳤다. 국내 중소기업이 354만 곳에 달하는 것을 생각하면 제도 활용도가 얼마나 저조한지 알 수 있다.

승계한 뒤도 문제다. 5년 전 아버지로부터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을 물려받은 A대표는 “대기업 납품단가 인상률은 최저임금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기업은 적자인데 폐업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자동차 시장 불경기에 매출이 줄고 있지만 폐업할 경우 기존 상속세에 이자가 더해진 가산세까지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A대표는 “상속공제제도 사후 요건에 따라 직원을 줄일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라고 말했다.

고용·업종·지분을 10년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 요건은 빠르게 변하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이런 지적에 따라 정부는 사후관리 요건 기간을 7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업 상속이 용이하도록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도한 사후 요건을 더욱 낮춰야 한다”며 “상속할 때 세금을 내지 않고, 상속받은 재산을 처분할 때 세금을 내게 하는 자본이득과세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확대할 경우 편법 상속에 대한 우려도 커질 수 있다”며 “공제제도보다는 상속세 자체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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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임성빈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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