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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통천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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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BC 2457년의 오늘, 홍익인간의 통천문(通天門)이 열렸다는 개천절입니다. 누구나 하나씩의 하늘을 이고 살지만, 현대인들은 어찌 그리도 바쁜지 고개 들어 바라볼 시간조차 없나 봅니다. 하루에 한번쯤이라도 기지개 켜며 하늘을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지요.

푸른 하늘의 거대한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달라집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의 한 장면처럼 거울 속에서 그녀를 계속 훔쳐보듯, 하늘의 거대한 청동거울을 바라보는 순간 저 하늘에서도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면 뒷골이 서늘해지겠지요. 하지만 세상이 그리 권태롭거나 팍팍하지도 않겠지요.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에 오르려면 통천문을 지나야 하는데, 사실 하늘 문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곧 하늘(人卽天)이라 목욕재계의 어머님이 장독대 위에 올리던 정한수, 그 맑은 물에 비친 만큼의 하늘이 바로 통천문이겠지요. 무지개는 저 하늘에서 마주치는 그대와 나의 간절한 눈빛이요, 태백산 신단수는 다름 아닌 우리의 몸입니다.

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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