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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일 관계 숨통 여는 데 일왕 즉위식 '이낙연 카드' 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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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주말인 5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나눔대축제를 방문해 전시부스를 돌아보며 한국스카우트연맹 대원에게 받은 스카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말인 5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나눔대축제를 방문해 전시부스를 돌아보며 한국스카우트연맹 대원에게 받은 스카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공식 즉위식에 이낙연 국무총리를 한국 정부 대표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얼어붙은 한ㆍ일 관계에 숨통을 틔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와대, 곧 축하사절단 발표

교도통신과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7일 한국이 이 총리를 즉위식에 참석시키겠다는 의향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총리실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단 총리실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즉위식에 참석하는 타국 정상이 50명 선인 것으로 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가면 50명 중의 한 명인 셈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밀도 있는 만남도 이뤄지기 힘든 만큼 문 대통령보다 이 총리가 가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이번 주 중 청와대가 축하 사절단 명단을 공식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과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으로 양국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일왕 즉위식은 중요한 외교적 기회로 인식됐다. 일본에 국가적인 대경사인 만큼 한국에서 고위급 인사가 참석해 축하한다면 화해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 '이낙연 총리 참석' 보도

나루히토(德仁) 일왕과 마사코(雅子) 왕비기 지난 5월 왕궁(황거)에서 일반 국민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일반참하·一般參賀)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나루히토(德仁) 일왕과 마사코(雅子) 왕비기 지난 5월 왕궁(황거)에서 일반 국민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일반참하·一般參賀)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리가 참석하게 된다면 다른 국가들의 참석 인사들과 견줬을 때 격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원래 미국에서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보내려 했으나, 탄핵 조사 등 국내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일레인 차오 교통부 장관을 보내는 것으로 변경했다.

국무총리, 격과 무게감 충분  

또 한국의 국무총리는 외교 의전상 국가 원수 바로 다음 서열인 행정부의 수반인 데다,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군에도 속해 있는 만큼 그 자체로 이 총리가 갖는 무게감도 크다. 이 총리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지일파로 인정받아 왔기 때문에 더욱 적절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외교가에선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적절히 역할을 분담해 정상급 외교 분야에서 함께 뛸 필요가 있다”며 ‘투톱 체제’ 분담을 언급, 이 총리의 외교 행보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리가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게 된다면 이를 계기로 어려운 국면에서 일본의 전ㆍ현직 정부 고위 인사들을 만나 양국이 정치적 결단을 통한 관계 개선 필요성 등을 설득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정상급의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면서도 각국에서 고위 인사들이 모여드는 만큼 한ㆍ일관계만을 의제로 ‘원 포인트 특사’를 보낼 때 수반되는 정치적 부담도 없다.

“국민 간 우호 위해 노력” 강조 효과

이 총리가 즉위식에 간다면 이는 한국이 정치적으로는 일본과 관계가 어려워도 양국 국민 간 우호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강조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실제 한국 내에서도 일왕에 대해선 역사 수정주의를 고수하는 아베 정부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나루히토 일왕은 태평양 전쟁 패전일인 지난 8월 15일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내놓은 첫 메시지에서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말해 아버지인 아키히토(明仁) 상왕의 평화주의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시사했다. 전쟁의 책임이나 반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아베 총리와는 명확히 비교됐다.

나루히토 일왕 내외가 8월15일 도쿄도 지요다(千代田)구 '닛폰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열린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 아베 신조 총리의 추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나루히토 일왕 내외가 8월15일 도쿄도 지요다(千代田)구 '닛폰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열린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 아베 신조 총리의 추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왕, 아베와 달리 평화주의 노선 표방

이에 지난 2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는 오히려 여당 의원들이 일왕 즉위식에 의미를 부여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를 촉구하기도 했다. 심재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왕은 아베 총리와는 다르다. 평화 애호가”라며 “일왕 즉위식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왕 즉위식에 참석할 대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대미 메시지도 신중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워싱턴에서 한ㆍ일 관계 악화의 원인을 한국에 돌리며 ‘트러블 메이커는 한국’이라는 식의 여론전을 펴고 있다”며 “이 총리가 즉위식에 참석하게 된다면 한국이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메시지를 미국에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 수출규제 장기화시 업종별·부문별 피해 예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본 수출규제 장기화시 업종별·부문별 피해 예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외교 차관 협의도 가능

국무총리의 해외 일정은 통상 외교부 1차관이 수행한다. 따라서 이 총리가 움직인다면 외교 당국 차원에서는 자연스럽게 일본통인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간 협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에도 조 차관이 일본을 찾아 아키바 차관과 만났지만, 이견을 좁히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일왕 즉위식쯤 다시 만난다고 해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지혜·백민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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