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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상-분단현실의 접목|새 통일방안 특징과 전망 <긴급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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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이 11일 국회에서 밝힌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의 특징과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 등을 남북관계 전문가인 정종욱 교수(서울대)와 이호재 교수(고려대)의 특별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정종욱 교수=노태우 대통령이 제시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질화돼 가는 남북을 모두 포용하고 통일로 가는 중간과도기 체제로 남북연합을 설정하고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호재 교수=그렇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측이 내놓았던 통일방안은 북한의 평화공세가 있을 때마다 이에 대응키 위해 내놓은 산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내용들이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번 방안은 전체적인 구도를 설정하고 중간단계로 남북연합을 제시해 통일이라는 「이상」과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한데 묶여지도록 한 점이 돋보입니다.

<3단계설계 눈길>
▲정=통일에 접근하는 시각을 과거처럼 단순한 영토통합이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보지 않고 분단 44년으로 훼손된 민족공동체를 회복한다는 시간적 개념을 포함시킴으로써 통일을 총체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이 종전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연합을 이룩하고 남북연합을 통해 통일을 달성토록 설계한 것은 통일의 각 단계가 토막 나지 않고 3단계가 연속적으로 물려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이=내용 면에서 볼 때도 북한측의 주장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고 북한의 고려연방제가 갖는 상징적 공세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그렇습니다 북한이 특허처럼 내놓는 군사문제나 군축문제 등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거 양측 통일방안처럼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보지 않고 민족공동체 회복이라는 우리민족의 내부문제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이번 안은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중간단계에서 상당히 접근해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면에서 저쪽은 선전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어찌됐든 남과 북이 형식면에서나마 접근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요.
▲정=그러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과 고려연방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고려연방제는 1국가에 2체제가 연립토록 하고있어 공존을 위한 중간단계이지 결코 통일완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고있지 않습니까.

<발표시기 안 좋아>
▲이=북한이 60년대 처음으로 고려연방제를 제시할 때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북측체제의 우월성을 밑바탕에 깔고 우리체제를 흡수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번 통일방안은 역으로 우리의 상대적 우월감이 저변에 있긴 하지만 저쪽을 우리 쪽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의도 없이 공존을 통해 통일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특히 고려연방제는 주한미군철수나 국가보안법 철폐. 공산주의 활동 합법화와 같은 우리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제조건을 달고있고 현실적 실체를 전혀 인정치 않고 애매한 최고민족 연방회의를 제시하는가 하면 정책면에서도 군대를 공동으로 보유한다는 등 비현실적인 면이 강하지 않습니까.
▲이=반면 우리측 안은 북한의 실체, 즉 정부·의회, 그리고 최고통치권자인 주석을 인정하고 있고 문제해결도 이런 기구를 통해 해보자고 한 점이 크게 다르지요. 바로 이점에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제도화하려는 우리측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정=성격 면에서 비교해 볼 때 고려연방제는 연방제라는 법적이고 제도적인 점에 매달리고 있는 반면 우리측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 회복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적·문화적·역사적인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구 면에서 북한의 2배를 능가하면서도 남북동수로 평의회를 구성하자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우리측이 일의 성사를 얼마나 열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이번 통일방안이 국내에서 어느 정도 호응을 받을까 모르겠습니다.
▲정=정부가 입안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했다고 하고 국회통일 공청회 등에서 제시된 야당의 통일방안도 수용하고 있으므로 별 문제가 없으리라 봅니다.
▲이=정부에서는 그렇게 되길 바라겠지만 이번 통일안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라 할지라도 공안정국으로 국내정치가 첨예하게 대립돼있고 5공 청산·민주화 등에 합의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통일안이 국내정치 진화용이거나 집권당의 인기를 높이려 한다는 일부의 비난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정=발표시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항간에 우리측 밀사가 북한을 왕래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이번 통일안에는 북측의 의견이 수용돼 있을까요.
▲정=그거야 알 수 없죠.(웃음)
▲이=최근 일련의 밀입북 사건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번 통인 안을 보고「과거보다 낫다」든가, 「그럴 듯 하다」는 반응을 보일지 모르지만 이를 통해 통일의 실마리를 풀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북한이 우리 안을 받아주느냐의 여부가 관건 아닙니까.
▲정=물론 북한은 주한미군철수·남한내부 변화를 요구하고있기 때문에 보나마나 우리 안을 거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그런데 이번 통일안을 자세히 보면 모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정상회담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데 실무자나 각료급등 하부기관의 논의 없이 곧바로 정상회담이 가능할까요.
▲정=반드시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요. 기존에 열려있는 창구가 있으니 이를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자꾸 바꿔서 혼선>
▲이=대외적으로 볼 때도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상당히 어려운 경쟁을 할 것 같아요. 우선 저쪽은 20여 년 동안 똑같은 트레이드마크를 갖고 나오고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발표할 때마다 명칭과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번 안이 비록 내용에서는 압도하더라도 신뢰성에서 뒤진다는 약점이 있지요. 이번 안은 최소한 10년 이상 밀고 갔으면 해요.
▲정=통일방안이라는 것은 남북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정통성 경쟁의 일환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우선 「고려」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비롯해 내용상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2O여 년 간 선전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의 통일안이 경쟁에서 다소 불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다만 통일문제는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해요. 사실 밀입북사건도 통일문제를 너무 서두르다 나온 일이고 이로 인해 오히려 남북관계 개선이 지연되고 있지 않습니까.
▲정=옳은 지적입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남북한 평화공존입니다.
남북관계가 급격히 개선되지도 않겠지만 급격히 악화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번 통일안은 국내정치와는 상관없이 통일을 향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봅니다.

<정리=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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