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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서울교통공사 채용은 상 받을 일”…박원순 시장의 궤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을 본 적이 없다.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에서 실제로 채용 비리가 있었다는 그제 감사원 조사 결과에 대해 “비리가 없었다는 게 오히려 확인됐다”며 “감사원이 시대적·역사적 과제와 노동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한 판단”이라고 궤변을 펼친 박원순 서울시장 얘기다. 박 시장은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사실로 드러나 감사원으로부터 주의조치를 받고도 사과하기는커녕 발표 바로 다음 날 서울시 세금으로 운영되는 tbs교통방송에 출연해 “칭찬받고 상을 받아야 되는 일을 감사원이 지적했다”며 거꾸로 감사원을 비난했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감사원이 1년을 끌다 내놓은 감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교통공사 무기계약직 1285명 중 재직자의 친인척(4촌 이내)이 14.9%에 달하는 192명으로 확인됐다. 감사 전 알려진 숫자(112명)보다 크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상당수(129명)가 서울시의 정규직 전환 방침 직전에 입사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엔 아들의 채용을 청탁한 직원, 친인척을 통해 교통공사에 직고용된다는 사실을 미리 전해 듣고 위탁업체에 입사해 정규직이 된 직원 등 고용세습이 직접적으로 확인된 사례도 다수 포함돼 있다.

감사원은 이밖에도 국회가 친인척 관계 직원 명단 제출을 요구하자 본인 아내 이름을 전환자 명단에서 삭제하는 등 사실과 다른 자료를 제출한 교통공사 인사처장 등 직원 9명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 요청을 하고, 김태호 사장은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박 시장이 라디오에서 주장한 대로 “고용 세습이나 친인척 비리가 없다는 게 확인”된 게 아니라 거꾸로 엄중한 비리가 있었다는 게 감사로 밝혀진 것이다.

백번 양보해 박 시장 말대로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라 쳐도 서울시가 제대로 된 의견수렴 없이 촉박하게 교통공사에 방침을 시달해 결과적으로 고용 세습의 판을 깔아줬다는 게 이번 감사 결과의 핵심이다. 처음부터 의도한 일은 아닐지라도 과정의 불공정 탓에 공정한 절차를 거쳤더라면 정규직이 됐을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은 만큼 조직의 장으로서 국민에게 머리숙여 사과하는 게 옳은 자세다. 그런데도 무슨 염치로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국민은 조국 법무부 장관 본인과 그 가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여권 인사들의 일상화된 궤변만으로도 충분히 화가 나 있다. 채용 비리를 “칭찬받을 일”로 포장하는 궤변까지 듣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