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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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가을이 되니 청명한 하늘이 드러나는 날이 많아졌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원래는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로, 송창식이 노래한 것이다.

과거 이 노래를 인용하면서 여기에서 쓰인 ‘푸르른’은 표준어가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운율을 중시하는 시나 노래 등에서 ‘푸르르다’가 많이 쓰여 왔지만 표준어가 아니어서 일반 글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푸르르다’ 대신 ‘푸르다’를 써야 했다. 즉 ‘푸르른 날’이 아니라 ‘푸른 날’이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2016년 ‘푸르르다’가 표준어로 편입돼 지금은 쓰는 데 문제가 없다. 사전에는 ‘푸르다’를 강조해 이르는 말이라고 올라 있다. ‘푸르다’는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또는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는 뜻이다. ‘푸르르다’와 ‘푸르다’는 의미는 거의 같지만 활용은 다르다.

‘푸르다’는 ‘러’ 불규칙용언이다. ‘푸르어’가 아닌 ‘푸르러’로 활용된다. 과거형은 ‘푸르었다’가 아닌 ‘푸르렀다’가 된다. ‘푸르르다’는 ‘으’ 불규칙용언이다. ‘푸르러(←푸르르+어)’ ‘푸르렀다(←푸르르+었+다)’로 활용된다. 이때는 결과적으론 ‘푸르러’ ‘푸르렀다’로 두 단어 모두 활용형이 같다. 자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올 때만 다르다. ‘푸르다’는 ‘푸른’ ‘푸르고’ ‘푸르니’ ‘푸르지’, ‘푸르르다’는 ‘푸르른’ ‘푸르르고’ ‘푸르르니’ ‘푸르르지’로 표기해야 한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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