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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인생 리셋한 전광인 “처음부터 다시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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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현대캐피탈 전광인은 지난 시즌 챔프전 우승과 MVP 수상(아래 사진)으로 최고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는 ’아직 몸 상태가 100%는 아니지만, 목표는 여전히 우승“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현대캐피탈 전광인은 지난 시즌 챔프전 우승과 MVP 수상(아래 사진)으로 최고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는 ’아직 몸 상태가 100%는 아니지만, 목표는 여전히 우승“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올 3월 말 남자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당시 현대캐피탈 전광인(28·1m94㎝)은 퉁퉁 부은 왼쪽 무릎을 끌고 나왔다. 2015년부터 아팠지만,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아픈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우승하고 싶었다. 경기 전엔 진통제 주사를 맞았고, 경기 중엔 진통제를 먹었다. 통증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는 더 높이 뛰어 공을 때렸고, 바닥에 쓰러지며 서브를 받았다.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에 3연승으로 우승했다. 챔프전 3경기에서 55점을 기록한 전광인은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그러나 그의 무릎 연골은 너덜너덜해졌다.

진통제 맞으며 챔프전 우승 견인 #4년간 버틴 무릎 결국 수술대에 #재활 고통 이기고 실전훈련 시작 #최근 아들 얻어 더욱 각오 다져

6개월이 지났다. 19일 충남 천안 현대캐피탈 전용 체육관에서 만난 전광인은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무릎이 아파 찡그린 얼굴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는 “예전 통증이 10이었다면 지금은 3이다. 통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때 비하면 살 만하다”고 말했다. 전광인은 4월 1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파열된 왼쪽 무릎 연골 일부를 정리하는 수술을 받았다. 9세에 배구를 시작한 이래 처음 받는 수술이었다. 무릎이 처음 아팠던 건 한국전력에서 뛰던 2015년이다. 그는 “처음엔 미세 파열이었는데, 무릎을 계속 쓰다 보니 점점 심해졌다. 왼쪽 허벅지가 오른쪽보다 굵어질 정도로 근력 운동을 해서 버텼다”고 전했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공격수 전광인이 19일 오후 현대 전용 훈련장인 충남 천안 현대캐피탈 체육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공격수 전광인이 19일 오후 현대 전용 훈련장인 충남 천안 현대캐피탈 체육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광인은 챔프전 MVP를 타고 가장 높이 올라간 뒤에야 수술을 택했다. 수술 이후 경기력이 떨어진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에 수술을 꺼렸다. 그는 “두려워서 끝까지 고민했다. 그런데 최태웅 감독님이 수술을 권유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전광인은 현대캐피탈과 연봉 5억2000만원에 3년간 계약했다. 당시 연봉 2위였다. 거금을 들여 데려온 선수인데 무릎 수술로 새 시즌을 날릴 수도 있다. 구단이나 감독으로선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전광인은 “감독님은 문성민, 신영석 형이 수술 후 잘 복귀한 모습을 봤다. 구단 재활 프로그램을 잘 따라 하면 예전처럼 뛸 수 있다고 믿으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광인은 수술을 받은 지 사흘 만에 재활을 시작했다. 최태웅 감독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왼쪽 다리의 근육이 다 빠지고 무릎을 굽힐 때마다 고통이 따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난 4개월간 일주일에 6일씩 하루 7시간 넘게 재활에 매달렸다. 물속에서 걷는 것부터 시작해 기초 근력 운동을 거쳐 러닝머신까지 뛰게 됐다. 너무 고통스러워 트레이너 형에게 짜증을 많이 냈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88㎏이던 전광인 체중이 94㎏이 됐다. 늘어난 6㎏이 전부 근육이다. 그는 “온몸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새 외국인 선수 요스바니 에르난데스(28·쿠바)가 아픈 어깨로 팀에 합류한 ‘덕분’에 재활 동지가 생겼다. 그는 “요스바니가 열심히 재활하는 걸 보니 (나도)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며 웃었다.

[포토]전광인,MVP 키스

[포토]전광인,MVP 키스

전광인은 이달 초 볼을 던지고, 점프하는 실전 훈련에 들어갔다. 3주가 지났다. 그는 “처음 배구를 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느낌을 설명했다. 그는 “동료의 공을 받기도 어렵고, 점프도 높이가 낮다. 전력을 다해 높이 뛰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당황스럽다. ‘0’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에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최태웅 감독은 전광인 심정을 잘 알고 있다. 최 감독은 “의사가 ‘재활 기간이 5개월’이라고 말하면, 5개월 만에 원래 경기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5개월은 통증 없이 일반인처럼 생활하는 데까지를 뜻한다. 경기를 할 수 있는 몸은 그다음부터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 허리와 발목 부상과 수술로 고생했던 경험이 묻어 나오는 설명이다. 최 감독은 “코보컵부터 조금씩 출전시켜 경기력을 끌어올릴 생각이다. 정규시즌에는 분명히 예전 경기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근(5일) 전광인은 아들(루안)을 얻었다. 그는 “재활하느라 임신한 아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잘 견뎌줘서 고맙다. 이번 시즌에는 아빠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들 얘기를 하는 그의 얼굴에 전에 없던 생기가 돌았다.

천안=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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