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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추억 어린 대구집, 시민 손으로 기념관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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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6일 대구 중구 남산로8길 25-16 한옥. 전태일 열사가 1963년 가족과 함께 1년여를 살았던 집이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17일 이 주택을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김정석 기자

16일 대구 중구 남산로8길 25-16 한옥. 전태일 열사가 1963년 가족과 함께 1년여를 살았던 집이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17일 이 주택을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김정석 기자

16일 오후 대구 중구 남산로8길 25-16. 좁은 골목에 기와지붕을 한 한옥 한 채가 있다. 한옥 마루에선 노부부가 소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며 점심을 하고 있었다. 방수포가 덮인 지붕에는 낡고 금 간 기왓장이 드러나 있고, 벽 곳곳엔 칠이 벗겨져 있었다. 언뜻 봐도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는 걸 느끼게 한다. 이곳은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1948~70·동상) 열사가 서울에서 살다 대구로 돌아와 1년여를 살았던 집이다. 1963년, 그의 나이 15세 때였다.

10대 시절 가족과 살던 남산동 집 #시민단체 회원 500여 명 모금 동참 #5억원에 사들여 전시관 등 꾸미기로 #열사 50주기인 내년 6월 매입 완료

70년 11월 13일 22세 나이로 노동자 권리보장을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48년 8월 26일 대구 중구 남산동 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 생가는 도로에 편입되면서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전 열사는 6세 때인 54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면서 대구를 떠났다. 서울에서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62년 대구로 다시 내려와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전 열사 가족이 다 함께 이 집에 살게 된 건 63년이다. 전 열사는 집 근처에 있는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를 다녔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엔 전 열사가 이 학교에 다니던 때를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꼽았다고 나온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전 열사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해 12월 학교를 그만뒀다. 이듬해인 64년 초 어머니가 식모살이하러 서울로 떠났고, 전 열사도 막냇동생 순덕을 업고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이후 전 열사는 서울 평화시장 의류제조회사 수습공, 구두닦이, 재봉사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고향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전태일

전태일

지금 집 주인인 최용출(69)씨는 이 집에서 54년을 살았다고 한다. 전 열사가 집을 떠난 뒤부터 이곳에서 살았지만, 전 열사나 그의 가족을 만난 적은 없다. 집이 워낙 낡아 점점 생활하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그는 집을 지켜왔다고 한다.

최씨는 “8년 전 이 집을 떠나 새집으로 이사하려 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69)씨가 내가 떠나면 집이 허물어질 수 있다며 간곡하게 이사를 말린 데다, 나도 역사적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집을 팔지 않고 불편을 감수하며 계속 살았다”고 말했다.

이곳은 앞으로 전태일 기념 공간으로 거듭난다. 전 열사의 삶을 기리기 위해 구성된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 ‘대구 전태일 기념관’으로 만들기 위해 17일 최용출씨 부부와 집 매매 계약을 한 것이다. 계약에는 전태삼씨가 참석했다. 대구시민 5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전태일의 친구들은 지난 3월 창립 후 기금 1억원가량을 모았다. 계약금 10%를 낸 뒤 전 열사 50주기인 내년 6월까지 잔금을 모두 치러 최씨 집 매입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대지 200㎡가량인 이 한옥의 매매가는 총 5억원으로 알려졌다.

전태일 기념관 조성계획은 매매 완료 후 마련될 예정이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전 열사가 살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일부 시설을 전시관과 노동인권센터, 노동교육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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