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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카페서 공부하니? 차라리 독서실 가라" 했던 내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43)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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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잡기 놀이
- 윤경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데

여수 밤바다에 가본 사람 아닌 사람
양수리 물안개에 젖어본 사람 아닌 사람
시끄러운 카페에서 공부해본 사람 아닌 사람
자신 안에 여러 마음이 싸우는 사람 아닌 사람
잘 나가는 녀석의 뒤통수를 쥐어박고 싶었던 사람 아닌 사람
선물은 받는 게 좋다는 사람 주는 게 더 좋다는 사람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는 사람 아닌 사람

그의 얼굴이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는데

마음껏
기뻐하고 분노하고 쑥스러워하고 우울해하고
아파하고 부러워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고
또 미안해하고 용서하고
다만 미워 좋아 편 가르지 않고,
어쩌다 마주친 그들이 던지는
두 번째 시선을 뻔뻔스레 즐길 수 있다면
세상의 파도타기에서
중심잡기 놀이 같은 다양한 삶이 열려 있을 텐데

해설

'공부는 도서관서’ 편견 깬 요즘 카페 풍경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인 일명 '카공족'이라 불리는 학생들이 서울대 입구역 앞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인 일명 '카공족'이라 불리는 학생들이 서울대 입구역 앞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 전문점에 앉아 공부하며 책을 읽는 젊은이를 보면 의아했다. 과연 그렇게 소란스러운 곳에서 온전히 집중될까. 분심이 들어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올까. 이성 친구랑 앉아 소근 대느라 공부가 될까.

내 학창시절 카페는 음악이 흐르고 약간 어둑어둑해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곳이 될 수 없었다. 그저 빈 강의시간을 이용해 친구들이랑 잡담하거나 음악 감상을 하는 곳이었다. 조금 능력이 되면 이성 친구랑 연애를 핑계로 경양식을 시켜먹는 곳일 뿐이었다.

하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한번 시끌벅적한 곳에서 젊은이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다. 아니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가한 일요일에 집 근처 커피 전문점에 나가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비교적 쉬운 책을 읽어보았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책에 빠질 수 있었다. 가끔 옆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귀에 들어왔지만, 요즘 살아가는 모습이 이런 거려니 했더니 책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어 이해가 잘 됐다. 커피를 홀짝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는 재미도 쏠쏠치 않았다. 정말 다양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누구나 자유롭고 남의 시선과 눈치를 보지 않으며, 행복한 얼굴에 즐거워한다는 거다. 공연히 무게 잡고 앉아 고독을 씹는 듯한 옛날 카페 정경이 아니었다. 반면에 그런 카페 분위기가 싫은 남학생은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술집에서 날을 지새웠다.

공부와 독서는 조용한 도서관이나 방에서 혼자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시대에 뒤처진 편견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음번에는 아예 노트북을 가져다가 시와 글도 써보자는 욕심도 생겨났다. 여유와 풍요의 모습이 내게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줄 것 같았다. 다양한 느낌과 생각이 땅속 고구마처럼 번져나갈 것 같았다.

심리학 용어에 확증편향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속담과 유사한 말이다.

나만 해도 그 비싼 커피 값을 내가며 과제물을 준비하고 공부를 하는 내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한 달이면 비용이 얼마나 들 터인데 그 돈이면 숫제 독서실에 등록하겠다며 쓴소리를 하고 부정적인 정보를 찾아내려고만 하였다. 그런데 경험 삼아 한번 시도해 보니 오해라는 게 밝혀졌다. 아뿔싸,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이 너무 늦었다.

인간의 태도와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두뇌이다. [사진 pixabay]

인간의 태도와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두뇌이다. [사진 pixabay]

인간의 태도와 생각을 지배하는 건 두뇌이다. 최근에 두뇌의 신비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 우리가 두뇌에 대해 얼마나 오해했는지 밝혀졌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의 감정을 단지 길들여야 하는 야생마쯤으로 여겼었다. 감정은 변연계 편도체에서 발생한다. 그러면 기억 장치인 해마와 연결해 과거의 어떤 기억이 지금 감정과 연관되는지 찾는다. 그런 다음 전전두피질에서 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을 내릴지 결정한 다음 대응책을 강구한다.

원시시대의 인간 조상은 위험이 닥쳤을 때 생존과 직결된 편도체의 즉각적인 ‘투쟁-도피’ 회로를 가동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산속에서 긴 막대기와 맞닥뜨렸을 때 뱀으로 오인해 사지가 얼어붙거나 도망가게 하는 본능이 이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런 긴급한 상황에 노출될 위험이 드물어졌다. 얼마든지 훈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찾고 불같이 일어난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두뇌 생리학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은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다. 두뇌가 외부의 자극, 경험, 학습 때문에 구조 기능적으로 변화하고 재조직된다는 현상이다. 신경 경로는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며, 새로운 언어나 운동기능을 습득하면 성년기나 노년기에도 신경가소성이 유지된다. 즉 자기가 어떤 면에서 부족한지 깨닫고 그 방면에 노력을 기울이면 뉴런의 연결능력과 두뇌 활동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도 뇌가 똘똘해진다는 뜻이다.

앨빈 토플러는 “21세기 문맹인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걸 잊어버리고 다시 배우는 걸 포기한 사람을 말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말 대로라면 문자 가독률이 95%가 넘는 우리나라 성인은 문맹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된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뺀 1년 평균 독서량이 1권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제법 독서를 하더라도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는데 굼뜬 편이다. 나도 좀 그런 편이니 문맹에 가깝다고 하겠다.

공자는 배움을 특별히 강조한 분이다. 논어의 첫 글자가 배울 학(學)이다. 인생의 단계별 목표 설정에서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첫 번째로 강조했다. 노자와 심지어 아랫사람에게도 예를 물었던 그는 평생을 배움을 구하는 자세로 살았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70세엔 ‘하고픈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배움이 온전한 인격에까지 확장된 것이다.

지성보단 이성· 감성 닦아야

조만간 컴퓨터 AI가 인간보다 지적 능력이 월등해질 것이다. 이제는 지식을 얻는 것보다 이성과 감성을 닦아야 한다. [사진 pixabay]

조만간 컴퓨터 AI가 인간보다 지적 능력이 월등해질 것이다. 이제는 지식을 얻는 것보다 이성과 감성을 닦아야 한다. [사진 pixabay]

한동안 남보다 월등한 지식을 가져야 쉽게 성공했던 현대인도 이제는 지식을 연마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만간 컴퓨터 AI가 인간보다 지적 능력이 월등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성 일변도에서 벗어나 정의라는 이성을 확고히 하며 기계가 지닐 수 없는 감성을 닦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뛰어난 창의성은 진선미가 고루 발달해야 찾아온다는 게 증명됐다. AI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감성을 통한 창의력 증진만이 살길이다. 예상보다 자기 감성을 옳게 표현하는 사람이 드물다.

지식은 충분하나 인격은 부족

요즘 우리나라 사회를 보면 지식은 충분하나 인격이 부족한 사람이 넘친다. 특별히 남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감성에 문제점이 있는 사람이 많다. 자기감정을 골고루 표현하고 제어하는 훈련이 부족해서 남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다. 게다가 네 편 내 편, 편 가르기를 하며 남들의 감정을 아예 묵살해버린다. 타인을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감정은 나쁜 거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억압만 할 게 아니다. 인간의 감정을 종류별로 세세하게 익히고 정도껏 표현하며, 남의 감정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하겠다. 나부터라도 언어습관을 바꿔야 하겠다. ‘~라고 생각해’라는 말보다‘~라고 느껴’라는 말이 훨씬 부드럽고 여유가 풍기지 않는가.

윤경재 한의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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