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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외면 당하는 풍수해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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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부화재 보험설계사인 이모씨는 농민이나 사업자에게 풍수해보험을 설명할 때마다 벽에 막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씨는 "여름철에 자연재해의 90%가 집중되고 보험료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지원해 주니 지금 풍수해보험에 가입하는 게 좋다"고 권유하곤 했다. 그러나 "수해가 나도 정부가 보상해 주는데 왜 내 돈 내고 보험에 들어야 하느냐"는 핀잔만 되돌아왔다.

풍수해보험은 태풍.호우.강풍.해일.대설 등으로 주택이나 농.임업용 온실, 축사 등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를 보상해 주는 상품이다. 보험료의 50%와 보험회사의 운영사업비.수수료 일부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 주기 때문에 조건도 좋은 편이다. 재해로 집이 모두 부서지면 정부는 임시 집을 짓는데 3000만원이 들 것으로 보고 이 액수의 30%(900만원)만 피해자에게 지원한다. 그러나 집 파손에 대비한 풍수해보험은 연간 9800원만 보험료로 내면 50%(1500만원)를 보험금으로 지급한다. 보험료가 올라가면 보험금도 늘어난다.

이런 장점에도 풍수해보험은 영 인기가 없다. 시범 사업자인 동부화재는 5월부터 강원도 화천군, 충북 영동군, 경북 예천군 등 전국 9개 시범 지역에서 이 상품을 팔고 있지만 14일까지 두 달 동안 382건밖에 팔지 못했다. 시범 지역의 판매 대상 15만8118가구 중 0.24%만 이 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손해보험사가 새 상품을 내놓으면 처음 두 달간 보통 4000~9000건 정도 파는 점을 고려하면 풍수해보험의 판매 실적은 민망할 정도다.

다른 재해 관련 보험도 마찬가지다. 2004년 화재보험에 가입한 39만여 명 중 호우.태풍 등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풍수재보험 특약에 가입한 사람은 8%에 불과했다. 2001년 도입된 농작물재해보험도 가입률이 24.5%에 머물고 있다. 여름철마다 호우.태풍이 반복되지만 대부분 시민이 이들 재해에 대한 보험을 들지 않는 것이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농민이나 사업자가 자연재해에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한 데다 정부가 복구비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재해보험 가입에 소극적"이라고 진단했다.

외국 사정은 어떨까. 세계적인 재보험회사인 스위스재보험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연재해 피해액(2200억 달러)의 3분의 1 정도인 780억 달러가 재해보험금으로 지급됐다. 이 중 690억 달러를 미국 등 북미 국가 가입자가 받아갔다. 반면 대지진으로 7만3000여 명이 사망한 카슈미르 지역은 보험 가입이 전혀 없었다.

갈수록 자연재해는 늘고 있다. 보험은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한 가지 방편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천재지변이라고 팔자에 맡겨 두거나 정부 지원만 기대하기보다 내가 스스로 대비할 때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김창규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