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두고 폼페이오는 “린치핀” 해리스는 “코너스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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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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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4일(현지시간) ‘2019 인도양 콘퍼런스(IOC)’ 연설에서 “한·미 동맹은 지역 안보와 안정성을 위한 주춧돌(cornerstone·코너스톤)”이라고 강조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히려 외교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코너스톤’이라는 단어였다.

오바마 “한국이 린치핀” 표현 바꿔 #당시 일본 외교가 작지 않은 충격 #미 국무부 “정책에는 변화 없다”

올 6월 미 국방부가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 등을 통해 공식 입장을 표명할 때 미 행정부가 한·미 동맹에 대해 붙였던 수식어는 핵심축(linchpin·린치핀)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달 발표한 광복절 축하 메시지에서 “한·미 동맹은 동북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린치핀 역할을 해 왔다”고 명시했다.

코너스톤은 통상 미 행정부가 미·일 동맹에 대해 쓰는 표현이다. “미·일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 평화와 번영을 위한 코너스톤”(국방부 전략보고서)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해리스 대사는 한·미 동맹에 대해 린치핀이 아니라 코너스톤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특히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한·미 관계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는 가운데 나온 표현이었다. 두 표현 모두 핵심적 관계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어느 쪽이 더 높은 층위의 표현인지를 두고 단순 우위를 따지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그런데도 이 표현이 한·일 외교가에서 항상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데는 배경이 있다.

원래 린치핀은 미·일 동맹에 따라붙던 수식어였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미 동맹을 린치핀에 비유했고, 이후엔 지금과 같은 표현이 자리 잡았다. 코너스톤은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재선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당시 일본 외무성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내부적으로 린치핀과 코너스톤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관계를 뜻하는 것인지 연구까지 한 것으로 안다. 결론은 린치핀이 더 무게감이 있다는 것이어서 린치핀을 한·미 동맹에 빼앗긴 외무성 미국통들이 매우 씁쓸해했다”고 전했다.

해리스 대사가 왜 지금 한·미 동맹을 코너스톤에 비유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일각에선 해리스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라 군 출신인 만큼 이런 차이를 중시하기보다 둘 다 중요한 동맹을 뜻하는 수식어로 생각하고 혼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해리스 대사도 알 건 다 안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해리스 대사는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을 지내는 등 한·일 관계를 비롯한 역내 상황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숨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해리스 대사가 강조해온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일본은 사실상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국가다.

이와 관련, 국무부 관계자는 한·미 동맹에 대한 수식어의 표현이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인지에 대한 중앙일보의 문의에 “우리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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