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등기된 건물을 샀다, 손배소 상대는 국가? 매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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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14)

'손해'는 법으로 보장된 이익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것을 뜻한다. [사진 pixabay]

'손해'는 법으로 보장된 이익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것을 뜻한다. [사진 pixabay]

민사소송 중 가장 흔한 건 손해배상소송입니다. 손해배상은 고의 또는 과실로 채무불이행(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또는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입힌 손해를 배상하는 걸 말합니다(민법 제390조, 제750조). 손해배상이 인정되기 위해선 ‘채무불이행’, 또는 ‘위반행위’와 ‘손해’가 전제된다는 겁니다. 손해는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어야 하고요(이를 ‘인과관계’라고 합니다).

손해배상, 불법행위와 ‘현실적’ 손해 전제

손해는 법으로 보장된 이익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것을 뜻합니다. 법으로 보장되지 않는 이익에 불이익을 준다면 손해가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 한때 ‘신기술 인증제품 구매’를 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가 신기술 인증품 생산 업체에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지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는데요(대법원 2015년 5월 28일 선고 2013다41431 판결). ‘신기술 인증제품 구매’ 취지는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신제품 인증을 받은 사람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한마디로 인증품 생산 업체의 이익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교통사고를 예로 들면 구체적으로 후유증이 나타나야만 비로소 손해가 현실화 된다. [사진 pixabay]

교통사고를 예로 들면 구체적으로 후유증이 나타나야만 비로소 손해가 현실화 된다. [사진 pixabay]

손해는 또한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가령 교통사고 후유증의 경우를 볼까요. 예기치 못한 후유증이 발현할 때까지는 손해는 잠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후유증이 나타나야만 비로소 손해가 현실화된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소멸시효 역시 후유증이 발현할 때를 기준으로 합니다.

최근 대법원이 교통사고로 뇌 손상을 입은 어린이가 사고 후 5년이 지나 언어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을 때 보험사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도 같은 취지입니다(대법원 2019년 7월 25일 선고 2016다1687 판결).

하지만 손해가 실제로 현실화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손해의 현실화 여부를 사회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지요. A의 사례를 볼까요.

A는 2014년 인천의 한 건물 402호를 1억 5100만원에 경매로 매수했고, 몇 달 후 B에게 1억 6000만원에 다시 팔았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402호 등기부의 대지지분이 실제지분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B는 2014년 8월 A에게 ‘등기부 있는 대로 나머지 대지지분도 모두 이전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억울한 것은 A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A는 등기부 기재를 신뢰하고 경매절차에서 402호를 매수한 후 B에게 있는 그대로 넘긴 것이기 때문이지요. 역시나 잘못된 등기부 대지지분을 토대로 감정평가된 것을 비싸게 산 것이란 얘기입니다. 결국 A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과정에서 1999년 등기부가 전산화될 때 등기공무원이 등기부에 잘못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천의 한 건물 402호를 경매로 매수해 B에게 판 A씨. 뒤늦게 등기부의 대지지분이 실제지분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pixabay]

인천의 한 건물 402호를 경매로 매수해 B에게 판 A씨. 뒤늦게 등기부의 대지지분이 실제지분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pixabay]

등기공무원 잘못임이 드러난 이상 1심과 2심은 국가가 A에게 2265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뜻밖에도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대법원 2019월 8월 14일 선고 2016다217833 판결). 대법원은 A가 입은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며 국가가 A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 손해가 현실화된 것은 B지 A는 아니라고 본 겁니다.

B가 A에게 책임을 추궁해 A가 B에게 과다한 지분내역을 반환하거나 B가 A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하는 등의 사정이라면 A의 손해가 현실화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B가 ‘부족한 지분을 이전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만으로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사례를 볼까요. C와 D는 C의 건물과 D의 임야를 서로 교환하겠다고 약정했습니다. 다만 C의 건물에는 은행 담보대출과 임차인들에게 반환해야 할 보증금이 있었기 때문에 D가 C의 채무를 승계하기로 하고 C는 D에게 차액 1000만원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약속과 달리 D는 C에게 약속한 은행대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임차보증금도 내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D는 건물 소유권도 이전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건물은 경매로 넘어갔고 은행과 임차인들이 건물소유자로 남아있던 C를 상대로 소까지 제기했습니다. C가 보유한 다른 부동산 역시 가압류되었지요. 결국 C는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참다못한 C가 D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은 손해의 현실화 여부를 사회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실제 구체적인 상황은 다를 수 있어 이를 두고 다투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진 pixabay]

대법원은 손해의 현실화 여부를 사회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실제 구체적인 상황은 다를 수 있어 이를 두고 다투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진 pixabay]

C의 안타까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1심과 2심은 C가 실제로 은행 채무를 변제하거나 임차보증금을 반환한 적이 없어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반대로 대법원은 C의 손을 들어주었지요(대법원 2001월 7월 13일 선고 2001다22833 판결). D의 약속 이행으로 인한 C의 손해가 현실화된 것이라 판단한 겁니다.

손해배상 소멸 시효는 3년

A 사례로 다시 돌아와 보겠습니다. 대법원 판시처럼 사실 급한 측은 A가 아니라 B입니다. A는 중간매도인일 뿐이니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아쉬울 것도 없고 잘못도 없는 A 입장에서 B가 요구한 대로 지분차액을 굳이 순순히 반환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결국 소송은 A가 아니라 B가 제기해야 했던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만약 B가 A만 믿고 그간 아무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난감할 겁니다. 등기공무원의 잘못이 드러난 때로부터 3년의 소멸시효가 지난 현 상황에서는 B가 뒤늦게 손해배상을 받기도 절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김용우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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