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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있습니다" 변론종결 날짜 미룬 채무자가 웃었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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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11) 

돈을 빌려주면서 구체적인 이율을 정하지 않았을 때는 민법상 법정이율인 연 5%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상거래에 따른 금전거래라면 상법상 법정이율인 연 6%의 이자가 적용된다. [사진 freepik]

돈을 빌려주면서 구체적인 이율을 정하지 않았을 때는 민법상 법정이율인 연 5%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상거래에 따른 금전거래라면 상법상 법정이율인 연 6%의 이자가 적용된다. [사진 freepik]

돈을 빌려주면 얼마의 이자를 받을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이율을 정하지 않았다면 민법상의 법정이율인 연 5%의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상거래에 따른 금전 거래라면 상법상의 법정이율인 연 6%의 이자가 적용됩니다.

물론 법정이율보다 이자를 더 받기로 약속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현행 이자제한 법령상 연 24%의 이자를 초과하는 건 어렵습니다. 국가에서 과한 이자를 받지 말라고 제한한 겁니다. 그런데 연 5%의 이자를 약속했더라도 연 12%의 이자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A가 B에게 1억원을 1년간 빌려주고 연 5%의 이자를 받기로 했는데 B가 약속한 기간 내 돈을 갚지 않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A는 B를 상대로 법원에 1억원의 원금과 이자(지연손해금)를 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겠지요. 이때의 이율은 어떻게 계산될까요. A가 작성한 소장이 법원에 접수되고 B가 법원에서 그 소장을 받는 날까지는 약속한 5%만 내면 되는데 그다음 날부터는 12%의 지연손해금을 물어야 할 겁니다.

지연손해금은 소송지연을 막고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고율의 지연손해금이 계속 불어나기 전에 B가 A에게 빌린 돈을 갚아 신속하게 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애초에 약속하지도 않은 12%의 이율까지 물어내야 하는 B의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B는 빨리 돈을 마련해 빌린 돈을 갚아야 조금이라도 이자를 덜 낼 수 있습니다.

지연손해금 법정이율인 연 12%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 본문의 법정이율에 관한 규정’, 이른바 ‘소촉법 시행령’에 따라 지난 1일부터 적용 중입니다. 2015년 10월 1일 전엔 무려 연 20%였는데 4년 전 5% 포인트 내렸다가 최근 3% 포인트 더 인하된 겁니다. 저금리 기조에 따른 변화된 경제 여건 등을 반영한 것이지요.

소촉법 시행령. [제작 현예슬]

소촉법 시행령. [제작 현예슬]

그렇다면 소송이 계속 중인 민사사건은 어떤 이자율을 적용받게 될까요. ‘소촉법 시행령’ 부칙엔 2019년 5월 31일까지 제1심 변론이 종결된 사건의 경우 종전 이율(연 15%)을 따르라고 돼 있습니다.

여기서 ‘변론이 종결’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법원에선 판결문을 쓰기에 필요한 주장과 자료를 충분히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민사재판에서 판사가 ‘변론을 종결하고 언제 선고를 하겠다’고 말하면 그 날이 바로 ‘변론종결일’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연손해금의 이율이 갑자기 달라질 경우 패소자가 내야 할 지연손해금은 결국 변론종결일이 언제냐에 따라 갈릴 수 있습니다. 재판 기간이 길어지면서 배(원금)보다 배꼽(이자)이 커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단 얘깁니다. 문제는 변론종결일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C가 D에게 10억원을 빌려주고 2019년 1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볼까요. 당연히 C는 소촉법 시행령에 따라 15%의 지연손해금을 기대했겠지요. 몇 차례의 치열한 공방을 거쳐 2019년 5월 31일 최종 변론기일이 지정되었다고 한다면 C와 그 변호사는 당연히 그 날 변론이 끝날 것이라 예상할 텐데요. 그런데 재판에 출석한 D와 그 변호사가 갑자기 새로운 주장을 하면서 이를 입증할 자료가 있다며 다음 변론기일을 지정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소촉법 시행령은 2019년 6월 1일부터 적용되므로 최종 변론기일이 6월 1일 이후라면 기존 15% 였던 지연손해금을 12%만 받을 수 있다. [사진 freepik]

소촉법 시행령은 2019년 6월 1일부터 적용되므로 최종 변론기일이 6월 1일 이후라면 기존 15% 였던 지연손해금을 12%만 받을 수 있다. [사진 freepik]

설상가상으로 재판장도 D의 말에 일리가 있다면서 다음 변론기일을 지정할 테니 증거자료를 내라고 합니다. 이때 D의 새로운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밝혀져 C가 결국 승소한다 해도 C는 재판이 지연된 데 따라 연 15%가 아닌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사이 지연손해금 법정이율이 낮아졌기 때문이지요. D의 변호사는 오히려 D에게 3% 포인트의 지연손해금을 자신이 깎아주었다고 생색낼지도 모를 일입니다.

변수는 이뿐 아닙니다. 갑자기 종결된 변론이 재개될 때도 그렇습니다. 재판부에서 2019년 5월 31일 이전에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보니 제대로 심리가 되지 않는 부분을 새로 발견해 그 후로 변론을 재개한다고 하면 C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을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촉법 시행령’ 개정 소식이 들리면 당사자뿐 아니라 변호사들은 상당히 긴장할 수밖에 없는데요. 필자 또한 2015년 10월 1일의 ‘소촉법 시행령’ 개정 당시 제1심 변론종결이 임박한 재판이 있어서 아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필자가 소송대리인으로 관여한 민사소송의 소가는 무려 100억원에 달했지요.

2015년 10월 1일 직전 무사히 제1심이 변론 종결되면서 판결문에는 인하 직전 지연손해금인 20%가 기재됐습니다. 만약 미진한 변론을 해서 재판이 더 지연되거나 변론이 재개됐다면 지연손해금은 연 15%로 무려 연간 이자액이 5억원가량 차이 날 수 있었던 겁니다.

김용우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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