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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당한 것도 억울한데, 떨어진 내 차 값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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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9)

자동차의 하락한 교환가치로 인한 손해를 '격락손해' 또는 '감가손해'라고 부른다. [사진 pixabay]

자동차의 하락한 교환가치로 인한 손해를 '격락손해' 또는 '감가손해'라고 부른다. [사진 pixabay]

교통사고가 나면 나중에 차를 팔 때 제값을 받지 못합니다. 보험처리를 할 경우 사고 이력에 남아 향후 사고 차량이란 딱지가 붙고 중고차 시세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락한 교환가치로 인한 손해를 ‘격락손해’ 또는 ‘감가손해’라고 부릅니다(자동차 보험약관에는 ‘자동차시세하락손해’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사고당한 것도 억울한데 애지중지하던 차 값까지 떨어진다면 분통이 터질 겁니다. ‘격락손해’는 당연히 보상받아야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항상 인정되는 건 아닙니다. 최근 사례로 확인해 볼까요.

A는 2016년 중앙선을 침범해 좌회전하는 가해 차량으로부터 차량 좌측 부분을 충격받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A의 차량은 유명 수입차이긴 했지만 2003년식 모델로 누적 주행거리는 16만 7620km였고 2015년 보험에 가입하면서 책정된 차 값은 대략 690만원이었지요. A는 차량 좌측 범퍼를 교체한 후 법원에 가해 차량의 보험사를 상대로 격락손해 200만원을 청구했습니다 (광주지방법원 2018. 11. 27. 선고 2018다53312 판결 사안).

B는 2014년 음주 운전자로부터 뒷부분을 들이받혔습니다. 신차등록 후 약 4년이 지났을 땐데 유사한 연식의 중고차 시세는 2330만원이었지요. 사고로 차량 후미 부분이 대부분 파손됐고 수리비 견적만 중고차 시세의 96%인 2245만원에 달했습니다. B가 차량기술사에게 의뢰한 결과 격락손해는 629만원이었고 감정비도 33만원이나 내야 했지요.

B는 수리 후에도 지속해서 문제가 발생하자 중고로 차량을 판 뒤 법원에 가해 차량의 보험 차량을 상대로 662만원의 격락손해 보상을 청구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1. 8. 선고 2018나6319 판결 사안).

격락손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주요 골격 부위가 파손되는 등 중대한 손상이 있어야 한다. [사진 pixabay]

격락손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주요 골격 부위가 파손되는 등 중대한 손상이 있어야 한다. [사진 pixabay]

두 사례의 결론은 정반대였습니다. 모두 일방적으로 사고를 당했지만 A는 격락손해를 배상받지 못했고 B는 격락손해에 감정비까지 배상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격락손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주요 골격 부위가 파손되는 등 중대한 손상이 있어야 하는데요. 중대한 손상이 있는지는 사고의 경위 및 파손부위 및 경중, 자동차의 연식 및 주행거리, 사고 당시 자동차 가액에서 수리비가 차지하는 비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됩니다(대법원 2017. 5. 17. 선고 2016다248806 판결).

B 차량은 파손부위도 중하고 차량도 비교적 신차로 차 값 대비 수리비가 높은 중대한 손상이 있지만 A 차량은 비교적 경미할 뿐 아니라 연식도 오래되고 누적 주행거리도 길다는 점에서 중대한 손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또 다른 C의 사례를 볼까요.

C는 고속도로에서 전방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운전자로부터 뒷부분을 추돌당해 376만원의 비용을 들여 수리해야 했습니다. 사고 당시 C 차량의 누적 주행거리는 1만1731km에 불과했고 중고시세는 2950만원이었지요. 그전에는 사고 이력도 전혀 없는 신차나 다름없던 겁니다.

C는 수리를 받고 차량기술사로부터 312만의 격락손해도 평가받아 가해 차의 보험사에 청구했는데요. 뜻밖에도 보험사는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가해 차량이 가입한 자동차 보험약관 때문이었는데요. 지급기준에 ‘출고 후 2년 내 수리비용이 사고 직전 자동차시세의 20%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격락손해를 보상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던 겁니다(보험사의 약관은 금융감독원의 표준약관에도 따른 것으로서 대다수 보험사의 약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C 차량의 수리비는 중고차 시세 대비 20%에 못 미치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험사와 옥신각신하던 C는 결국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보험사를 상대로 격락손해가 청구됐을 때 법원은 가해 차량이 가입한 보험약관을 근거로 격락손해를 인정하지 않거나 약관에 상관없이 인정했다. [사진 unsplash]

보험사를 상대로 격락손해가 청구됐을 때 법원은 가해 차량이 가입한 보험약관을 근거로 격락손해를 인정하지 않거나 약관에 상관없이 인정했다. [사진 unsplash]

보험사를 상대로 격락손해가 청구됐을 때 법원은 가해 차량이 가입한 보험약관을 근거로 격락손해를 인정하지 않거나 약관에 상관없이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르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보험사 입장에서도 무조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었지요. C가 제기한 소송에서도 2심 법원은 보험사 편을 들어줬습니다. C의 차량이 중대한 손상을 입었지만 가해 차량이 가입한 보험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최근 명시적으로 보험사가 C에게 격락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논란은 일단락됐지요(대법원 2019. 4. 11. 2018다300708 판결). 피해자는 C인데 가해 차량이 가입한 보험약관 지급기준에 따라 함부로 보상을 거절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격락손해를 무조건 인정하는 건 아닙니다. 격락손해를 배상받기 위해선 앞서 언급했듯 중대한 손상부터 인정받아야 합니다. 중대한 손상이 아니라면 보험약관은 더 따질 필요도 없겠지요. 만약 수리비가 차 값보다 더 나오는 경우에는 어떨까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수리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때는 중고차 시세에 준해서 보상을 받게 됩니다. 차 값에 격락손해까지 보상해 달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최근 금융감독원은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 출고 후 5년이 된 차량에 대해서도 격락손해를 보상하도록 하고 보상금액도 5% 상향했습니다. 차량등록 후 4년이 지난 B가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출고 후 2년 내의 차량에 한해 격락손해를 보상해준다는 과거의 표준약관 때문이었는데요. 어쨌거나 이 영향으로 손해보험사들도 보험료 인상을 고려한다고 하니 내년엔 자동차 보험료를 더 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김용우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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