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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지금 범보수 통합이 절실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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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50년 이렇게까지 일본과 척진 적이 없었고, 미국과 어깃장을 놓는 장면도 생소하다. 마침 이런 일이 ‘신냉전’ 체제로 세계질서가 바뀌는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불길하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공조를 기초로 한 자강(自强) 전략으로 성공 신화를 가꿔온 대한민국이 궤도를 이탈하려 하고 있다.

야권, 국민의 변화 열망 받들어야 #통합은 보수 책임이자 시대정신

외치뿐 아니다. 정부 수립 이후 지켜온 자유·시장·법치와 대의제라는 가치마저 흔들리고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데 시장을 살리기보다는 옥죄어 경제 활력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게다가 ‘예산 퍼주기’로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고, 세대 간 파트너십은 깨지고 있다. 정치에서는 자칭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신권위주의가 자행되고 있다. 지지층 결집에만 매달리고, 여론 공작이 버젓이 이뤄지고, 위선 덩어리인 사람을 ‘정의의 상징’ 자리에 앉히려고 국회를 무시한다. 국민통합은커녕 나라는 둘로 쫙 갈라지고 있다.

이 상황이 흡사 해방 직후 자유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의 갈래 길, 1987년 이전 독재와 민주 사이의 갈래 길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던 장면들과 흡사하다. 이런 상황에는 중간 길이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받는다. 지금 이대로 대한민국이 표류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제 궤도로 가도록 막아설 것인가. 그 선택이 정치고, 선거다. 정치란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고, 의사결정의 힘은 선거를 통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이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결집하는 게 시급하다. 문제는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현 야권의 상태가 별로 안 좋다는 것이다.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많은 국민이 여전히 보수 정당에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이 이 정도 쌓였으면 야권 지지율이 크게 올라야 하는데 답보 상태다. 비호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정치의식 지형으로 보면 중도층의 비중이 35% 내외로 비교적 두꺼운 편이지만 이들은 아직 보수 쪽에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다른 하나는 야권이 분열돼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진보가 분열로 망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보수가 분열로 망한다. 진보가 연합하고 보수는 분열하는 구도 속에서는 선거를 통한 ‘정권 심판론’이 제대로 먹혀들기 어렵다. 경기의 규칙인 선거법을 제1 야당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데는 야권 분열을 노리는 정략이 숨어 있다. 정당 지지율로 이삭줍기하려는 군소 야당이 많이 나오면 내년 총선은 ‘진보 연합’ 대 ‘보수 분열’ 구도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야권은 이 정권의 국정 기조를 견제하고 바꾸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을 받들 의무가 있다. 그것이 정치에서 책임이다. 이렇게 분열된 상태에서는 그 책임을 수행하기 어렵다. 야권 통합은 보수에 주어진 책임이자 시대정신이다. 명분이나 이익의 차이, 감정의 골 등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농축된 자유·공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진화시키는 길을 가려는 의지 속에 녹여내야 한다. 통합은 미뤄져 온 보수의 숙제, 즉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통합의 과정은 정당의 브랜드, 가치와 노선, 체질과 행태를 바꾸는 계기여야 한다. 그 귀결은 공천 혁신일 것이다. 보스 공천, 사심 공천으로 흘렀던 지난 실패를 반복한다면 통합을 해도 의미가 없다. 국민이 보기에 저 정도 인물들이면 희망을 걸 수 있다고 판단할만한 범야권 연합 진용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다시 분열로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작은 이해를 뒤로하고 통합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낼 것인가. 지금 국민이 야권에 묻고 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