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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급식·교복 분담금 더 내라” 광역 vs 기초 지자체 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강원도와 기초 지자체 간 예산 분담 갈등으로 ‘중·고교생 무상교복 사업’ 논의가 중단되자 학부모단체들이 지난달 27일 강원교육청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강원도와 기초 지자체 간 예산 분담 갈등으로 ‘중·고교생 무상교복 사업’ 논의가 중단되자 학부모단체들이 지난달 27일 강원교육청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2일부터 경기도 내 모든 고교(475곳)에서 무상급식이 시행됐다. 도내 고교생 36만3139명이 한 학기분(80일) 점심을 공짜로 먹는다. 여기엔 뇌관(폭탄 점화장치)이 숨어있다. 전체 예산 1465억원 중 65%만 확보됐다. 이 예산은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 각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나눠서 부담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전체 예산의 절반인 702억원을 모두 마련했다. 하지만 각 시군은 아직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경기도와 예산 분담 비율에 합의하지 못해서다.

경기 고교 급식, 강원 교복 등 #광역단체장 공약 사업 추진하며 #기초단체 예산 부담 불만 목소리 #“과도한 매칭사업 지역 재정 악화”

경기도는 고교 무상급식 예산의 나머지 50%를 경기도 30%, 기초 지자체 70%씩 부담해야 한다며 관련 예산으로 210억원만 편성했다. 그러나 각 기초 지자체는 “부담이 크다”며 절반씩 부담하거나 또는 경기도 70%, 시·군 30%로 조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고교 무상급식이 중간에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의 예산만으론 11월 중순까지만 무상급식이 가능하다. 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는 “도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예정대로 2일부터 고교 무상급식을 도입하기로 했다”며 “급식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기관들과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역 지자체와 기초 지자체들이 예산 분담 비율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각종 매칭 사업으로 빠져나가는 예산이 만만치 않아서다.

기초 지자체들은 “광역단체장 등이 공약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에 따른 과도한 예산 부담은 기초 지자체에 미루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 고교 무상급식 예산 분배 비율에 제동을 건 것도 경기지역 기초단체장들의 모임인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다. 최근 열린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고등학교 무상급식 예산 분담비율 결정 과정에 시·군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고교 무상급식 나머지 예산을 경기도와 기초 지자체가 절반씩, 또는 경기도 70%, 각 시·군 30%로 조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는 지난 4월에도 “경기도 제안 사업은 기본적으로 도와 각 시군의 예산 분담 비율을 5대 5로 해달라”고 당부했었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경기도는 고교 무상급식 비용뿐만 아니라 올해 어린이집 원아 한 명당 1만원을 지원하는 ‘어린이집 운영지원’ 사업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자체 예산은 30%인 50억원만 반영하고 나머지 70%를 기초지자체에 넘겼다”며 “정부 매칭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부담되는데 경기도 제안 사업까지 과도한 예산을 할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수원시의회와 광명시의회·하남시의회·오산시의회·양주시의회 등도 속속 ‘지방자치단체 재정부담 증가시키는 경기도의 매칭사업 개선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며 “매칭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기초단체에 예산 부담을 지우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원도와 각 시·군, 강원도교육청도 내년도 무상교복 예산 분담률을 놓고 줄다리기 중이다. 중·고교 신입생 2만6497명이 대상인데 한 명당 30만원씩 총 79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강원도의회는 지난 7월 내년도 무상교복 예산 분담률을 ‘도·시·군 40%, 교육청 60%’로 권고했다. 이에 강원도와 강원도교육청은 수용 입장을 밝혔지만 강원도 시장·군수협의회 회의에서 분담률을 ‘도·시·군 30%, 교육청 70%’로 결정하면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서울시도 무상급식·교복 등 무상 복지 예산의 분담률을 놓고 서울시와 각 구, 교육청이 갈등을 벌였었다. 막대한 예산 분담 등으로 고충을 겪어온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은 지난 1월 청와대에 “복지비 부담 가중으로 재정 파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권영주 서울시립대 교수(행정학과)는 “과도한 매칭사업은 지방자치는 물론 지역 재정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정부나 광역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은 관련 예산도 정부나 광역단체가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원·춘천=최모란·박진호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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