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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성혼·송익필의 친필 서한집 「삼현수간」 4권 92편 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율곡 이이·우계 성혼·귀봉 송익필 등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유학자 3인의 친필 서한문을 모은 『삼현수간』이 발견됐다. 모두 4권으로 돼있는 이 책은 이이와 성혼 이송익필에게 보낸 편지가 각각 12편과 48편, 그리고 송익필이 이들에게 답한 31편등 91편의 편지와 송익필이 쓴 서문등 모두 92편으로 구성돼있다.
이번에 발견된 『삼현수간』은 특히 지금까지 친필서한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율곡의 편지를 12통이나 담고 있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율곡의 서한문은 강릉능오죽헌에 보존돼 있는 『격몽요결』에 한두편 실린게 고작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삼현수간』은 송익필(1534∼1599)이 사망하기 직전인 1599년2월 그의 아들 취대가 부친이 보관하던 서한문들을 한데 모아 책으로 꾸민 것이다.
이들 3인의 편지는 주로 율곡과 우계가 질문하고 귀봉이 답하는 형식으로 돼있는데 예학과 성리학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비롯, 당시의 정치와 세태·생활상들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어 조선중기의 풍속사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귀봉 송익필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비첩인 겹서자 출신. 그러나 독학으로 성리학과 예학은 물론 서예, 특히 초서와 문장에 능해 당시「팔문장」으로 불리던 대유학자였다.
학문이 높을 뿐 아니라 인품도 고매해 율곡·성혼·정철등 당대의 거유들과 교분이 두터웠고 특히 조선중기 예학의 대표적 학자인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은 귀봉에게서 직접 학문을 배운 후학이다. 또 우암 송시열은 그의 학문과 인품을 흠모, 그가 죽은후 비문을 직접 써주기까지 했다.
서자출신이라 관직에 오를 수 없어 생전에 「송생원」으로 불렸던 귀봉은 그러나 정조때 사헌부지평으로 증직됐고 문경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삼현수간』은 귀봉의 아들이 김장생에게 준뒤 지금까지 광산김씨 종가에서 가보로 보존해 온 것을 최근 전적수집가 우찬규씨가 사들였다.
이 책을 검토한 문공부 문화재위원장 임창정씨(한림대 객원교수)는 『임진왜란으로 많은 전적들이 불타 없어지거나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임진왜란 전의 귀한 자료들이 발견돼 놀랍다』며 특히 『율곡의 서한문들은 아주 희귀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임위원장은 또 『이들의 서한문이 초서와 행서·해서로 돼있어 조선중기 서체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또 서예가 백아 김창현씨(여초 김응현의 형이며 일충 김충현의 제)는 『귀봉의 글씨가 활달하며 능숙한 맛을 풍기는데 비해 우계의 글씨는 선비풍의 조용함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귀봉의 서체를 조선조 초서의 최고달인이었던 양사언의 글씨와 비교하면서 『양사언의 글씨는 대자가 많고 예술성이 높은 데 비해 귀봉의 글씨는 학자의 심오한 맛을 느끼게 해 좋은 대조를 이룬다』고 말했다.
한편 『삼현수간』에서 귀봉이 밝힌 성리학과 예학에 대한 견해를 훗날 계곡 장유가 반박하면서 조선조 성리학은 발전의 계기를 맞게된다.
이에 대해 다시 남계 박세채가 장유의 주장을 반박하고 귀봉의 의견을 뒷받침하는등 논쟁을 거치면서 조선조의 성리학은 발전을 거듭하게 되며 귀봉의 학문은 정조대에 와서 높은 평가를 받게된다. < 유재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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