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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기업인이 수출규제 피해 얘기 꺼리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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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은경 사회2팀 기자

최은경 사회2팀 기자

“외람되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만 중소기업 모아 놓고 얘기를 듣고 하는 게…발표하기 싫습니다.”

지난 13일 경기도 성남시가 연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성남 기업 대표자 간담회’에서 한 반도체 부품 회사 대표가 발언 끝에 작심한 듯 이렇게 토로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성남 지역 중소기업 대표·임원 20여 명은 차례로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연구·개발, 임상, 인증, 출시, 판로 개척 과정의 애로와 건의사항을 말했다. 아직 직접적 타격이 없다거나 부품 대체가 가능할 것 같다는 회사들도 있었지만 ‘막막’ ‘심각’ ‘고민’ ‘우려’ 같은 단어가 자주 들렸다.

“(일본 부품을) 대체품으로 교체 뒤 재설계·재인증 등을 위해 비용·시간을 투입하게 되면 끔찍해진다”라거나 “일본을 배제하면 회사가 문 닫아야 한다”는 기업 대표도 있었다. 일부 기업인은 일본 바이어와 계약 전 갑자기 연락이 끊기거나 오랜 기간 거래해 온 업체가 한국에 오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변화를 체감했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28일 0시를 기점으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우대국)’에서 제외했다. 같은 날 정부는 앞으로 3년 동안 소재·부품·장비 연구 및 개발(R&D)에 5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함과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부품의 85%를 일본에서 납품받는 한 중소 로봇업체 대표는 통화에서 “일본 납품회사에 문의하자 ‘당장은 지장이 없을 것이지만 앞으로 일본 정부의 규제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회신했다”면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납기가 지연될까 염려되며 일부 부품을 독일·대만제로 바꿔가고 있지만 신뢰도가 확보되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기업인은 “국산제품을 쓰고 싶어도 신뢰할 만한 국산 제품이 어디서 생산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며 “정부가 국내 기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갖춰 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진행하는 일을 자세히 홍보하고 자주 업데이트해 기업과 소통하면 불안함과 답답함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바람도 나타냈다.

지난 간담회에서 은수미 성남시장은 기업인들의 얘기를 듣고 나서 “오늘 나온 의견을 중소벤처기업부·산업통상자원부 등 해당 정부 부처에 가감 없이 전달해 요청할 것은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관련 내용을 협의한 뒤 반드시 결과를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성남시는 아직 각 기업의 피해 여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가 좀 더 긴밀하게 협의해 지역 중소기업과 소통해야 한다. 이슈가 있을 때 일방적·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게 아닌 지속해서 쌍방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는 물론 성남시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은경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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