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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바이오 임상 실패율 7% ? 이젠 솔직해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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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수기 산업2팀 기자

이수기 산업2팀 기자

미국에서 임상 1상에 진입한 신약후보 물질이 신약으로 최종 출시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9.6%다. 신약후보 물질로 처음 채택될 때도 이미 ‘5000 대 1~1만 대 1’의 경쟁을 이미 뚫고 임상에 진입했다.

퀴즈 하나 더. 그럼 한국에서 임상 중 실패하는 확률은 얼마일까. 정답은 7.4%다. 성공률이 아니라 실패율이 7.4%다. 단순히 따지면 임상에 진입한 후보 물질이 신약으로 성공할 확률은 92.6%나 된다는 얘기다.

앞서 미국에서의 성공률은 미국바이오협회가 2006~2015년 1103개 회사의 7455개 임상 프로젝트 성공률을 조사한 결과다. 한국 것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3년부터 3년 6개월간 조사한 임상시험 중단현황 자료에 기초한다. 국내에서 총 2230건의 임상시험 중 중간에 임상시험을 접은 건은 166건에 불과하다. 비교 기준이 같진 않지만, 양국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최신의 자료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흔히 회자된다. 진짜로 미국 업체가 한국 업체들보다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걸까.

비밀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관행에 있다. 우리 업체들은 가능하면 임상 실패 같은 사실을 외부로 알리기 싫어한다. 우선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개발해 낸 신약후보 물질이 사장되는 건 피하고 싶어서다. 신약 개발 역사가 짧다 보니 이 후보물질이 그 회사의 유일한 파이프라인인 경우가 많다. 일부겠지만, 해당 후보 물질이 실패할 걸 알고 일부러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분 등을 정리해 돈을 챙기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임상 진입=신약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시선도 문제다. 1상에 진입해도 10년 가까이 자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신약이 나온다. 참고로 미국 식품의약처(FDA)의 임상 1상과 2상 성공률은 각각 63.2%와 30.7%다.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3상 성공률은 58.1%다. ‘임상 진입=신약’이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 ‘초등학교 입학=명문대 합격’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비용도 임상 2상보다 10배 가까이 든다. 임상 2상까지야 어떻게든 끌고 온다지만, 3상에 이르러서까지 얼렁뚱땅 넘어가긴 어렵다.

모든 시장이 그렇지만 제약·바이오만큼 수요자(투자자)와 공급자(업체) 간 정보 불균형이 심한 곳은 없다. 마침 검찰이 28일 신라젠을 압수 수색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졌다. 앞서 국내 통계에서 임상 실패를 시인한 건수가 가장 많은 제약사 1~3위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글로벌 제약사들이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도 이젠 좀 솔직해졌으면 한다.

이수기 산업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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