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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나의 삶이라는 책

나의 삶이라는 책

이 짧은 이야기로 말할 것 같으면 타인과 운동 경기를 함께 해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아주 드문 초월적인 순간에 관한 것이다. 혼동의 경기 와중에 모든 팀원이 경기장에서 각자의 이상적인 위치를 점한 순간, 내 것은 아닌 어떤 유의미한 의지에 따라 세상이 배치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 패스에 성공하고 나면 -순간이란 게 그렇듯- 소멸해버리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이 나와 완전히 이어졌을 때 찾아오는, 그 어렴풋한 찰나의 덧없는 육체적 절정의 기억뿐이다.

-알렉산다르 헤몬 『나의 삶이라는 책』 중.

축구 사랑이 지극한 작가가 “축구를 그저 쉬엄쉬엄하는 운동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은 절대 모를 그 얼얼한 감각”에 대해 썼다. “내게 있어 축구를 한다는 건 오롯이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축구 없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망망대해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보스니아 출신으로, 미국 방문 중 보스니아 내전이 일어나 원치 않은 ‘난민’이 된 작가는 주말마다 다른 이민자들과 모여 축구를 했다. “우리 -이국이라는 낯선 대해에서 가라앉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이민자들은 우리가 정한 규칙대로 흘러가는 축구를 하면서 위안을 찾았다. 우리가 여전히 세상의 일부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세상은 미국이라는 나라보다 훨씬 컸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