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소미아 파기 후폭풍, 더 이상 상황 악화는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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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선언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정부가 과연 지소미아 파기 이후의 파장을 예상하며 대책이라도 세워 놓고 결정을 내린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문재인 행정부’란 표현을 사용하며 강한 어조로 우려와 실망을 표출했던 미 국무부가 이번에는 주한미군 안전 문제까지 거론하고 나왔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소미아 종료는 한국 방어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미군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이를 한글 번역문과 함께 리트윗했다.

강도 높게 표출된 미국의 불만은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갈등을 이유로 한·미·일 삼각 협력의 틀을 흔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 데 따른 결과다. 고위급 채널을 통한 여러 차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시하는 협정을 하루아침에 걷어차 버린 데 대한 불쾌감과 한국 정부를 동맹의 파트너로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감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회의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 동북아 안보 전략의 대폭적인 수정을 미국이 검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가뜩이나 한국이 스스로 ‘애치슨 라인’ 밖으로 나가려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조야에서 나오는 판이다. 때문에 미국이 한국에 대해 동맹의 편에 확실히 서라며 방위비 분담 협상과 호르무즈 해협, 남중국해 등 현안에 청구서를 들이밀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이낙연 총리가 “(종료 시점까지) 3개월간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하고 우리는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의 진의, 특히 일본과 교감 아래 나온 언급인지도 분명치 않지만 철회 가능성을 열어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처음부터 협상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지소미아 파기라는 무리수를 둔 것이라면 그것은 한참 잘못된 셈법이다. 한번 금이 간 동맹 또는 우방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한·일 갈등의 해법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일구이언을 해 발생하는 위신 문제도 가볍지 않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대타협을 이뤄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한·일 간의 갈등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청와대나 정부가 먼저 나서 대결 국면을 조장하고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일을 벌여서는 절대 안 된다. 아베 정부 역시 마찬가지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