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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역대 최악 소득 양극화, 이번엔 고령화 탓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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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사상 최악 수준의 소득 양극화에 대해 저소득층의 고령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올해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소득 상위 20%(5분위)와 소득 하위 20%(1분위)의 격차가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인 5.30배에 달한 데 대한 해명이다. 이 수석은 또 1분위 소득이 감소세를 멈추는 등 전체적인 소득 수준이나 소득 분포에서도 상당한 개선이 있다며 “소득 개선의 정책 효과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보고 싶은 통계만 동원해 현실을 호도하는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는 무책임마저 느껴진다. 하위 계층의 가구주가 고령화하면서 소득이 감소하는 경향성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고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더욱 악화하는 양극화의 원인을 고령화 같은 인구구조 탓으로 돌리는 변명은 책임 있는 정책당국자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표되는 정부 정책에 문제가 없는지부터 돌아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저소득층의 자립과 자생 능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분위 근로소득(임금)은 15.3%나 줄고, 사업소득은 15.8% 늘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과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저소득층 일자리가 없어지고, 2·3분위에 있던 자영업자들이 1분위로 떨어진 탓이다. 1분위 가구가 정부로부터 받은 공적 이전소득 비중은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한 정책으로 저소득층을 어려움에 빠뜨리면서 그 충격을 세금으로 간신히 막는 상황을 오히려 ‘정책 효과’로 포장하고 있다.

경제 지표가 안 좋을 때마다 정책보다 외부 요인 탓을 대는 행태는 정부의 습관이 된 듯하다. 고용 문제가 나빠지자 인구구조 탓을 했고, 성장률이 떨어지자 글로벌 경제여건 악화를 이유로 댔다. 그런 가운데 소득 분배는 발표 때마다 최악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함께 잘사는 경제’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목표는 길을 잃고 있다. 여당과 정부는 ‘확장적 재정 운용’ 기조 위에서 내년 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 이상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정책 문제점을 끝내 외면한다면 재정 확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은 일자리에서 나오며, 일자리는 민간 시장 활성화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