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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공헌·협력 속 우리 스스로 강국 만들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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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50년간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우리 정치.경제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근간이 됐지만 지금은 외국과의 협력 속에 외세가 아닌 우리 힘으로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3년간의 끔찍했던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을 때 육군본부 작전국 교육과장(대령)이었던 유병현(柳炳賢.79.육사 7기) 예비역 대장은 1일 "이제 한국은 국제적 공헌 속에 강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78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과 이듬해 합참의장을 거쳐 81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한국전쟁 당시 신병들을 교육해 전선에 투입하고, 미군 지휘부에서 한국군의 상황을 전달하는 '브리퍼' 역할을 맡았던 그는 연대장으로 전투에 참가, 압록강까지 진출, 통일을 맛보는 듯한 기쁨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중공군 개입으로 입술을 깨물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휴전 당시 거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영국이 파병한 1개 사단을 철수시키겠다고 해 미국이 공산군과 휴전교섭을 시작했었지요. 우리 군의 열악함에다 다른 파병국들의 영세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지만 우리로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친 셈이죠."

그의 목소리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민족 간 전쟁에 외국군이 참가하는 현실을 지켜봤던 柳장군은 이후 사단장으로 베트남에 맹호부대를 이끌고 다른 민족 간의 전쟁에 참여했다.

최근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이라크 국군 전투병 추가 파병과 관련, 柳장군은 "파병해야 한다"고 단호히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몇 천명을 보내든 주력군은 건설공병과 의료부대.수송부대가 되어야 하며 이들을 지키기 위해 전투병을 같이 파병하면 된다"며 "총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대민지원을 통해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단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도 매달 두 번씩 직접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현지인들과 많은 대화를 했다"면서 "이라크 국민을 위해 병원과 학교를 짓고, 수송부대로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등 이라크 재건에 모범을 보인다면 이라크 국민은 물론 아랍권과의 유대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라크 파병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적 공헌과 협력을 통한 강국으로 갈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그는 "주한미군 재배치 등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도움 없이도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며 "우리는 과거 (다른 나라들이 한국에 베푼) 공짜만을 생각하는데 반드시 미국이 아니라도 외국과의 협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58년 진지 붕괴 사고로 왼쪽 다리와 척추를 크게 다쳐 걷기가 불편하고 허리에 통증방지 의료기구를 넣어 놓고 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한.미관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만은 누구 못지 않다고 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주미대사를 지냈던 그는 한.미관계에 이바지한 공로로 여섯차례나 훈장을 받기도 했다.

"더 이상 외국의 공짜 원조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강국 건설을 위한 첫걸음으로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는 5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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