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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서 유대인에 밉보이면 못 살아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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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WP)가 16일자 특집기사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 내 이스라엘 로비 실태를 파헤쳤다. 이 신문은 '아름다운 우정?:워싱턴에 미치는 이스라엘 로비의 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 행정부와 의회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미국민의 이스라엘 지지 여론은 사실 유대인들의 치밀한 로비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행정부 안에서 이스라엘 관련 전략회의가 시도 때도 없이 열리고,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있다'고 거듭 다짐해왔다. 여론도 다르지 않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미국 내 여론은 68%에 달한다. 이 모든 게 로비의 성과라는 게 WP의 분석이다.

미국 안에는 이스라엘 홍보위원회(AIPAC), 유대인위원회(AJC), 유대인 회의 등 다양한 단체가 이스라엘을 위해 뛰고 있다. 워싱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AIPAC의 경우 로비스트와 연구원이 200명이고, 연간 예산이 4700만 달러(약 450억원)에 이른다. 미국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회원이 10만 명이나 된다. 3월 약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 단체의 연례 총회에는 상원 의원의 절반인 50여 명과 하원의원 100여 명이 참석했고 딕 체니 부통령과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기조 연설을 했다. 이스라엘 관련 법안이 상정되면 AIPAC의 로비스트들은 의원들을 상대로 밀착 설득을 펼친다. 관련 발언과 활동을 모두 체크해 곧바로 회유하거나 압박한다.

유대인들에게 밉보였다가는 선거판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게 미 정가의 상식이다. 선거자금 모금을 좌우하는 게 유대인들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철수 정책을 추진했다가 AIPAC의 맹렬한 로비에 못 이겨 결국 철회했다. 하버드대의 스티븐 월트, 시카고대의 존 미어샤이머 두 교수는 3월 공동 논문에서 "이스라엘의 로비가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며 "이스라엘의 로비 때문에 아랍권 안에서 반미 여론이 악화되고 있고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WP는 미국 내 유대인들이 로비에 적극적인 이유에 대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들은 이스라엘을 다시는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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