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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심훈 詩 등장한 경축사···시인 출신 신동호 비서관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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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시(詩)가 자주 등장한다. 15일 발표된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대한민국은 독립선열들의 강인한 정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작가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을 갈망하며 모든 것을 바쳤던 선열들의 뜨거운 정신은 국민들 가슴에 살아 숨쉬고 있다”라면서다. 심훈은 소설 『상록수』로도 잘 알려진 1920~30년대 대표적 계몽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해방 직후 한 시인은 광복을 맞은 새 나라의 꿈을 이렇게 노래했다”며 194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즘 계열 시인 김기림의 ‘새나라 송(頌)’을 떠올렸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중략)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라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처음 맞은 2017년 추석 때 영상을 통해 내보낸 대국민 인사말에서 “국민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다”며 이해인 수녀의 시 ‘달빛기도’를 낭송한 적이 있다. 2018년 12월 크리스마스 때는 박노해 시인의 ‘그 겨울의 시’를 인용하며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신동호 대통령 연설비서관 [페이스북 캡처]

신동호 대통령 연설비서관 [페이스북 캡처]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감성 터치’ 화법에는 ‘대통령의 필사’로 불리는 시인 출신 신동호(54) 대통령 연설비서관이 있다. 대통령 연설문은 대통령 비서실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다듬어지지만 초안은 신 비서관 손에서 시작된다.

신 비서관은 강원고 3학년이던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오래된 이야기’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저물 무렵』 『꽃분이의 손에서 온기를 느낀다』『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서호(西湖)』 등의 시집을 펴냈다. 신 비서관은 한양대 국문학과(85학번) 재학 때 대학 1년 후배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다. 임 전 실장은 전대협 의장이었고 신 비서관은 전대협 문화국장이었다.

2017년 12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방문 때 동행한 신동호 연설비서관(맨 뒷줄 왼쪽 첫번째). [연합뉴스]

2017년 12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방문 때 동행한 신동호 연설비서관(맨 뒷줄 왼쪽 첫번째). [연합뉴스]

신 비서관과 문 대통령의 인연은 2012년 대선 때부터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2015년 2월 더불어민주당 전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취임한 이후로는 비서실 부실장으로 메시지 특보 역할을 맡았다. 둘의 관계를 잘 아는 민주당 한 인사는 “신 비서관은 딱딱한 현실 정치를 부드러운 감성 언어로 풀어내며 문 대통령철학과 핵심 메시지를 녹여내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평했다.

다만 야당을 중심으로 일각에서 “연설문이 너무 감성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대통령 연설문이 지나치게 미문일 필요는 없다. 미사여구보다는 실현 가능한 구체적 메시지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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