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모자 사망 원인 여러 가능성 있다"…정밀 부검 결과 기다리는 경찰

중앙일보

입력

12일 서울 관악경찰서는 서울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42살 한모씨와 그 아들 김모(6)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관악경찰서는 서울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42살 한모씨와 그 아들 김모(6)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말할 때 좀 어눌한 말투라서 중국동포인가 생각했어요.”

1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임대아파트의 한 주민은 탈북여성 한모(42)씨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한씨와 그 아들 김모(6)군은 지난달 31일 집 안에서 숨진 채로 아파트 관리인에게 발견됐다. 관리인은 아파트 복도 창문을 열어 집 안을 들여다보니 숨진 채 누워있는 모자(母子)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이날 한씨가 살던 집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한씨 모자는 탈북자 단체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인터넷과 휴대전화도 없이 생활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웃도 한씨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한씨의 또 다른 이웃은 “평소 모자를 꾹 눌러 쓴 모습을 자주 봤다”며 “먼저 인사를 건넨 적이 없어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가끔 문 너머로 아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는 주민도 있었다.

중국에서 13개월 지내다가 지난해 9월 귀국한 한씨 모자는 그동안 비워뒀던 봉천동 아파트에 정착해 지난해 10월 전입신고를 했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한씨는 중국에서 지내던 시절부터 18개월 동안 아파트 월세(임대료)와 전기·수도·가스요금을 밀렸다.

탈북인 여성이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 아파트 내부 모습. 한씨의 아들의 낙서가 그려진 문이 보인다. [뉴스1]

탈북인 여성이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 아파트 내부 모습. 한씨의 아들의 낙서가 그려진 문이 보인다. [뉴스1]

관악구청 관계자는 “한씨가 안 낸 임대료와 공과금은 가스요금 45만원을 포함해 480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보증금으로 1074만원이 걸려있어서 여기서 제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극단적 선택 도구, 약물 복용 흔적 없어” 

경찰 조사 결과 한씨 모자의 신체에 별다른 타살 정황은 없었다고 한다. 집 안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위한 도구나 약물통 등의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한씨 모자를 발견했을 당시 집 냉장고 안에는 ‘고춧가루’를 제외하면 물이나 쌀 등 먹을거리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한 씨의 통장에는 잔고가 ‘0원’이었다. 마지막으로 돈을 인출한 시점은 5월 중순으로 뽑은 금액은 3858원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시신이 부패한 정도를 바탕으로 모자가 그로부터 약 2주 뒤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씨 모자가 ‘굶주림으로 숨진 것 아니냐’는 가능성이 제기 됐다. 영양실조가 오랫동안 지속하면 여러 합병증이 발생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타살이나 자살 정황이 모두 없어서 정확한 사인을 확정할 수 없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고 한씨가 평소 앓던 질병이 있었는지 건강보험공단에 자료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씨 모자의 아사(餓死)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망 원인은 과학적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며“냉장고에 음식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망의 원인이 굶주림이라고 확답을 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사망 원인을 아사로 확정할 단계가 아니다. 다른 질병 여부 등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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