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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대 저성장 늪에 빠져든다”는 경고 들리지 않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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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이 1%대 저성장 국가로 전락한다는 경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연구기관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제는 현대경제연구원이 가세했다. 이 연구소는 현재 2.5%로 추정되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021~2025년 2%대 초반으로 낮아지고, 2026년 이후에는 1%대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생산요소를 투입해 물가 상승 부작용 없이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원론적으로는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면 늘어나게 돼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저출산·고령화의 길을 걸으면서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다는 것은 사람의 인체로 비유하면 성장판이 사실상 닫힌다는 얘긴데, 그 후유증은 심각하다. 한때 미국을 위협할 만큼 경제력이 왕성했던 일본의 영향력이 국제사회에서 쇠퇴하고 있는 것도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면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면 그동안 좁혀지던 일본과의 경제력 격차도 다시 벌어질 공산이 크다. IMF는 지난해 일본(100% 기준) 대비 79.7%까지 좁혀졌던 한·일 간 1인당 GDP가 올해 정점을 찍고 다시 벌어질 것으로 봤다. 일본과의 치열한 경쟁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한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1%대 저성장의 늪에 빠져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한국이 뒤로 후퇴하지 않으려면 잠재성장률 저하를 막아야 한다. 그 길은 노동·자본의 투입을 촉진하고 그 효과를 증폭시키는 생산성 향상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당장 반(反)시장·반기업적 소득주도 성장부터 폐기해야 한다. 이 정책실험은 지난 2년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그 폐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경제 생태계의 밑바탕인 자영업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실업률이 치솟고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 일본의 경제 보복 앞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 때문에 애로를 겪는 지경 아닌가.

내년에 510조원에 달하는 수퍼 재정을 쏟아붓는 정부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 안 된다. 구조개혁이라는 근본적 정책 대응을 통해 노동·자본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고령자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고 투자환경을 개선해 기업의 투자심리를 되살려야 한다. 지금처럼 재정만 물 쓰듯 쏟아부어선 미래세대에게 빚만 늘려주고 1%대 저성장 시대를 재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