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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 외교, 북·미 직거래에 소외돼선 큰일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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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하는 북한을 거드는 언급을 한 건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연합훈련 비용에도 인색한 트럼프 대통령을 부추겨 우리 안보의 들보인 한·미 동맹 허물기가 먹히고 있다는 조짐인 까닭이다.

‘한·미 연합훈련 폐지’ 공조 막으면서 #한국과 미 대북 정책 상의 다짐 받아야 #중·일도 접근 … 동북아 외톨이 피해야

트럼프는 지난 1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긴 친서를 받았다며 “편지의 대부분은 터무니없고 값비싼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평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그 훈련은 (실제로) 그렇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의 주장에 맞장구친 셈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의 5배인 50억 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 중이라고 한다. 트럼프의 지금 언사로 봐선 돈을 더 안 내면 연합훈련도 걷어치울 판이다. 북한의 노림수대로다.

더 걱정되는 건 연합훈련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우리의 머리 위를 넘어 북·미 간에 직접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김정은의 친서도 미 정부 고위관계자가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로부터 받아 워싱턴에 보낸 것이라고 한다. 북·미 간의 ‘한국 패싱’이 정착되면 보통 일이 아니다. 북핵 해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성사돼도 우리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희박해질 게 뻔하다.

실제로 우리를 밀어내려는 북한의 움직임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11일 한·미 연합훈련을 겨냥해 “군사연습을 한 데 대해 그럴싸한 변명이나 해명이라도 성의껏 하기 전에는 남북 접촉 자체가 어렵다”면서도 “대화를 향한 좋은 기류가 생길 때 북·미 대화에 나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북한이 추구해 온 전형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우리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정부는 행여 북·미 간 대화가 멈출까 봐 어떻게든 양쪽 간 접촉이 이뤄지도록 온 힘을 쏟았다. 지난 6월 김정은과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만났던 판문점 회동 때 문재인 대통령이 뒤로 빠져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듯 두 정상 간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두다 보니 우리를 거치지 않는 소통도 무방한 것처럼 돼버렸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의 시각과 방향이 무시될 위험이 크다. 그러니 모든 대북 정책은 한국과 반드시 상의해 결정한다는 원칙을 미국으로부터 다짐받아야 한다.

이런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또 다른 흐름이 있다. 갈수록 빨라지는 중국과 일본 간 접근이다. 한·일 갈등이 격화 중인 가운데 러위청(樂玉成)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일본을 방문해 지난 9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을 만나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런 양국 고위층 간의 전략대화가 열리기는 7년 만으로, 부쩍 가까워진 두 나라 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강제징용 판결로 거세진 일본과의 분쟁은 전면전으로 치달았으며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체계 문제로 악화한 중국과의 관계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북·미, 중·일은 급속히 가까워졌는데 우리만 갈수록 외톨이 신세다. 총체적 외교 위기를 넘어서려면 기존의 노선만을 고집해선 안 된다. 대북 올인 정책에서 벗어나는 한편 일본에 대해서도 유연한 자세를 가지는 게 바로 그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