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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가 1200만 원' 중국 구체관절 인형 1인자

중앙일보

입력

중국에서 ‘구체관절 인형의 일인자’라 하면 후옌잉(胡晏荧) 이름 석 자가 자주 거론된다. 그가 만든 ‘쉐이궁쯔(雪衣公子 설의공자)’는 폴리옥션(Poly Auction)에서 경매가 7만 위안(약 1200만 원)에 팔린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d2zi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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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기 전까지 사직서 제출만 5번

예술, 더군다나 구체관절 인형을 만든다고 하면 타고난 집안 배경에 고결하게(?) 작업에 열중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하지만 후옌잉은 원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직장 그만두고 바닥부터 시작한 도자기 인형 공예 #마리나 비치코바의 '인첸티드 돌'에서 영감 받아

부모의 눈에 후옌잉은 '제멋대로 사는' 아이였다. 회사를 관둔 것만 다섯 번. 은행에 들어갔다가 사진을 배운다고 영국으로 떠나더니 귀국 후 사진 기자와 에디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연예 기획사와 출판사를 거쳐 마지막으로 찾은 직업이 바로 지금의 일이다.

후옌잉의 작품 '쉐이궁쯔' [사진 d2ziran.com]

후옌잉의 작품 '쉐이궁쯔' [사진 d2ziran.com]

인민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후, 다섯번의 취업과 사직을 거치며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마지막 사표를 내기 직전에는 집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고 대인기피증도 생겼을 정도였다. 결국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그녀가 택한 건 중국 도자기의 메카 징더전(景德镇 경덕진)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후옌잉은 29살의 늦은 나이에 타향살이를 결심했다.

후옌잉의 작품 [사진 d2ziran.com]

후옌잉의 작품 [사진 d2ziran.com]

'인첸티드 돌'에서 영감받아 시작

사실 후옌잉이 징더전으로 향하게 된 계기는 러시아계 캐나다인 예술가 마리나 비치코바(Marina Bychkova)의 인첸티드 돌(Enchanted Doll) 때문이다. 마리나 비치코바는 몇 년 전 판빙빙이 프로포즈 선물로 화제가 된 구체관절 인형을 만든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리나 비치코바의 '인첸티드 돌'을 처음 봤을 때, 후옌잉은 인형의 백옥같은 피부와 눈빛에서 감도는 신묘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마리나 비치코바(Marina Bychkova)가 만든 판빙빙 프로포즈 인형 [사진 d2ziran.com]

마리나 비치코바(Marina Bychkova)가 만든 판빙빙 프로포즈 인형 [사진 d2ziran.com]

후옌잉이 징더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첸티드 돌'의 사진을 그 지역 도예가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누군가는 따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원하지 않는다"는 거절뿐이었다. 그런 인형을 만들려면 돈이고 시간이고 너무 많이 들어가 타산이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후옌잉이 직접 나서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날로 후옌잉은 공방을 드나들며 관련 기술을 접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취미로 미술학원 몇 번, 컵 만드는 도자기 클래스 몇 번 다녀본 게 전부였던 생판 초보였으니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고. 후옌잉은 이 시절을 두고, 코피까지 쏟을 정도로 체력을 요하는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잡생각이 안들고 뿌듯한 날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작업 중인 후옌잉 [사진 d2ziran.com]

작업 중인 후옌잉 [사진 d2ziran.com]

두 달 뒤부터는 근처에 작은 작업실을 하나 얻어 본격적으로 구체관절 인형 만들기에 돌입했다. 냉난방 시설도 없고, 쥐나 박쥐도 자주 출몰하는터라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작업을 하기도 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실패의 반복이었다. 계속된 실패 끝에 처음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 인형을 가마에서 꺼낸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기뻤다고 한다.

후옌잉의 작품 [사진 d2ziran.com]

후옌잉의 작품 [사진 d2ziran.com]

시간이 갈수록 기술이 손에 익었고, 인형 만들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쉐이궁쯔'라는 작품이 경매에 나가 7만 위안(약 1200만 원)이라는 고가에 팔리면서 일순간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마리나 비치코바의 인형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후옌잉의 작품은 그와는 약간 분위기가 다르다. 화려한 의상이나 고급진 자태는 없지만 마치 요정처럼 속세를 탈피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인형이다. 인형의 몸에 물고기나 학, 소나무 등의 문신을 새겨 넣는 것도 후옌잉 인형의 특징.

이름이 알려지면서 주문이 늘어났지만 대량생산은 하지 않는다. 작품마다 제각기 개성을 품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많은 사람들이 연간 50개씩만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만들수도 없어요. 하루 10시간씩 일한다고 해도 일년에 고작 20개 정도가 한계입니다."

차이나랩 홍성현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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